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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탈퇴자의 간증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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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락방의 이단성을 말한다



저는 다락방 1단계 전도 합숙훈련을 통해 다락방이 이단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그 근거를 한마디로 분명히 설명할 수는 없었습니다. 다락방의 이단성을 분명히 알고 싶었던 저에게 근 한달간 인터넷으로 찾아낸 자료들은 분명한 근거를 제시해 주지 못했습니다. 그렇기에 더더욱 답답했고, 제가 올바른 하나님의 교회를 대적하는 것이 아닌가 하고 두려웠습니다.

다락방이 강조하는 것들 중에서 큰 골자인

- 전도.

- 복음메세지

- 창세기 3장 문제

- 영적문제 해결

등을 적어놓고 그들의 이단성을 분명히 알게 해 달라고 하나님께 기도했습니다.

그러던 중에 전도(전도 지상주의)를 강조하는 다락방의 모습과 신약전서에 나오는 예수님의 전도를 비교하면서 그들의 이단성을 분명히 알 수 있었습니다.

3년간 다락방에서 배운 내용을 바탕으로 그들의 이단성을 적어 보겠습니다.



1. 다락방 이름의 대내외적 은닉성


다락방은 그 교세가 점점 커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이름을 최대한 숨깁니다.

새신자에게 이름을 말하지 않는 것은 물론이고 기존회원끼리도 웬만해서는 이름을 잘 언급하지 않으며, '지교회모임' 이라고 부르거나 부득이하게 대화중에 언급해야 하는 경우엔 '방(좀 세게 발음하여 빵 이라고 합니다.)' 으로 줄여 부릅니다.

이런식의 호칭도 오랫동안 배운 학생들끼리만 알아들을 수 있습니다.

그들은 다락방이 이단판정을 받았기 때문에 '다락방' 의 언급을 꺼린다고 변명하고 있지만, "다락방은 복음만 말한다" 고 주장하는 것 처럼, 그들이 틀림없는 하나님의 교회라면, 새신자와 기존회원들에게 숨길 이유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이름을 숨기고는, 일단 자신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라고 합니다.

이단들의 전형적인 모습입니다.

다락방이 무척이나 중시하는 사도행전의 어느 부분에서도 핍박 때문에 믿는 성도들끼리 서로의 모습을 숨겼다는 내용은 찾아볼 수 없습니다.

예수님도 드러내 놓고 복음을 전하셨고, 결코 숨기지 않으셨습니다.

또한, 회원들은 다락방에 대해서도 잘 설명하지 못합니다.

말을 안 해 주는 것이 아니라 못해줍니다.

모르기 때문입니다.

기존회원들 중에도, 처음에는 다락방인 사실을 모르다가 암암리에 나중에 알게 된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이때 나타나는 반응은 세 가지입니다.

그들의 묵인안에 참여하거나, 그만두거나, 그만두었다가 다시 돌아옵니다.

처음부터 알고 시작한 경우는 그리 많지 않습니다.

참으로 이상한 현상입니다.

그런데, 그만둔 사람들 중에는 이단판정의 정확한 이유를 알지 못하고 교계의 판정을 믿고 나오는 경우가 대부분이기 때문에, 기존교회로 돌아갔다가 다시 다락방으로 돌아오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런 사람은 이미 다락방의 메세지에 세뇌되었기 때문입니다.

계속해서 읽으면, 그들이 어떻게 세뇌되고 왜 그만 두지 못하는지 알게 됩니다.


간단히 말해서, 다락방은 일반성도들이 힘들어하는 성경읽기와 기도를 등한시하게 하고, 신앙생활의 방법을 이론적으로 왜곡시키고 단순화하여, 성도들로 하여금 쉽게 빠져들도록 만들기 때문입니다.

다락방 성도들조차도 다락방 이단판정의 이유를 확실히 알지 못하므로, 뜬 구름 잡는 식의 반박을 합니다.

혹은, "오해이다." "곧 이단판정이 풀릴 것이다." 혹은 "너무 정확한 복음을 말하니까.." 라고 하면서 변론을 피하기 위해서 침묵한다는 식의 반응을 합니다.

그들을 이단이라고 비판하는 사람들과의 변론을 피하고자 대답을 피한다는 것은 이해가 되지만, 그곳에서 배우는 사람에게조차 그 이유를 분명히 설명하지 못한다면, 그들의 모임의 이단여부를 반드시 밝혀야 한다고 생각을 했습니다.


이 모임을 그만두고 나올 때, 지교회 담당 목사에게 왜 다락방인 것을 숨겼냐고 물어보았습니다.

그러자 그 목사의 대답은, 다락방의 메세지를 들어보기도 전에 거부할까봐 숨겼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기존회원들에게 다락방에 대해 물었을 때, 그들이 제대로 대답해 주지 못하는 이유는 뭐냐고 묻자, 지도목사는 "그 학생들은 너에게 설명해 줄만큼 다락방에 대해 알지 못한다." 고 대답했습니다.

그 학생들은 저보다 나이는 어리지만, 저보다 훨씬 오래 전부터 이 다락방에서 공부한 학생들 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설명할 수 없다고 하는 목사님의 말을 듣고 기가 막혔습니다.

그리고 동아리담당 지도교수님께서 왜 다락방인 것 말하지 않았냐고 묻자, "제가 다락방인 것 말했으면 동아리를 맡아 주셨겠습니까?" 라고 말을 했다고 합니다.


신뢰가 깨진 관계는 회복이 어렵습니다.

또 무엇을 숨기고 있는지 어떻게 알겠습니까?

또 언제 무슨 사실이 새롭게 드러날지 누가 알겠습니까?

그때 또 "듣기도 전에 메시지를 거부할까봐 숨겼다" 고 할 것입니다.


다락방은,

"전도는 하는 것이 아니라 되어지는 것이다. 하나님이 되어지게 하신다. 전도는 어려운 것이 아니다. 우리는 다만 복음의 도구일 뿐이다. 성령이 임하시고 권능을 받은 전도자가 각 현장에 나가면 전도는 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복음이 갈급한 영혼을 준비된 전도자에게 붙이신다."

고 강조하여 말합니다.

그들이 정말 성령님을 온전히 신뢰한다면, 다락방이라는 사실 때문에 복음을 들을 기회를 거부하는 영혼을 걱정할 필요가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만나게 하신 영혼이라면 반드시 들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설사 듣지 않고 가더라도 하나님이 그 영혼을 책임지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다락방은 각 대학 내에 동아리 형식으로 침투하여 목사와 사역자 1명을 중심으로 지교회를 만들고 있습니다.

특히, 대학내 교직원이나 교수처럼 뿌리내리고 그들의 일을 꾸준히 도울 수 있는 사람들을 찾고 있으며, 학생들에게 대학원 진학을 통해 전문화되도록 권고하거나 혹은 직장 (회사, 학교등) 에서 다락방(운동)을 만들도록 지도합니다.

현재까지, 대학 내에 90개 지교회를 만들었으며, 앞으로 150개 지교회를 만들겠다고 목표를 삼고 있습니다.

다시 말해서 현재 우리나라 대학(전문대에서 4년제를 통틀어서)중 90개 대학에 이들의 모임이 있으며, 앞으로 그 모임을 150개로 늘려갈 것이라는 목표를 세우고 활동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전도요원화, 영적 엘리트 전도자' 는 전문분야에 깊숙히 들어가서 그 분야의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훈련된 전도자를 말합니다.

다락방은 대학뿐만 아니라, 류광수 씨의 서울 임마누엘교회 이외의 기존 교회에도 많습니다.

이런 교회들은 대부분 교회부흥을 목적으로 다락방을 도입한 개척교회가 주를 이룹니다.

교회 간판은 감리교다 장로교다 하면서도 실상 그 내용은 다락방인 것입니다.


다락방 프로그램에 참여해 보면, 목사에서 일반 성도까지 참여 구성원과 교단이 다양함을 알 수 있습니다.

다락방 프로그램에 참여한 후, 교회를 옮기는 중직자들이 많다고 합니다.

'교회의 급성장으로 인한 시기와 질투'는, 다락방이 이단판정이 억울하다는 근거로 자주 드는 것 중에 하나인데, 이는 곧 "교인을 빼앗긴 기존 교회들이 다락방을 시기하여 이단판정을 받게 되었다."는 주장입니다.

그래서 합숙훈련에 가면 다락방 전도사가

"교회를 옮기는 분들이 있는데, 오버(그 전도사의 표현 그대로입니다.) 하지 마십시오. 여기서 배운 내용을 기존교회에 가서 가르치시면 됩니다. 여러분의 교회가 바로 현장이 되는 것입니다."

라고 주의를 줍니다.

이 말은 어찌보면 다락방이 한국교회를 사랑하는 것처럼 생각하게 하지만, 기존의 이단과는 달리 그들만의 교회를 강조하지 않는 이런 모습은 '전교회의 다락방화'를 추구하는 그들의 전략입니다.

한국교회를 그들의 이단의 근거지로 삼겠다는 전략인 것입니다.

그런데 더욱 이상한 것은 기존교회 목사님들은 다락방에서 배우고, 그 교재로 성도를 가르치면서도, 그 교회와 다락방과의 연계를 부인합니다.

다락방에서 제일 윗단계 프로그램에서 훈련을 받고 있으면서도

"난 다락방과 상관이 없다."

고 말을 쉽게 합니다.

교재도 겉장을 바꾸거나 내용은 다시 인쇄하여 그 교회에서 만든 것처럼 속입니다.

어쩌다 밝혀지면, 방법론만 빌린 것이라고 합니다.

참으로 한탄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다락방은 방법론만 따올 수 없는 철저한 메시지 중심의 훈련입니다.

이러한 기존교회와의 연계가 다락방의 이단서을 파헤치는데 걸림돌이 됩니다.

다락방의 내용은 틀림이 없는데, 다만 이단판정에서 아직 풀려나지 않았기 때문에,

다락방과의 연계를 부인한다고 합리화하는 것은 목사로서 틀린 자세입니다.



이렇게 다락방과 기존교회와의 결합은 다락방 메시지와 하나님의 말씀을 섞어서 하나님의 말씀을 혼잡하게 만들며, 다락방의 실체를 흐릿하게 만드는 주된 요인이 됩니다.

다락방과 감리교가 접목되고 장로교와 다락방이 접목되어, 다락방이 거짓증거하고 있는 것들에 대해 기존교회가 대신 나서서 많은 변명을 해 줍니다.

즉, 다락방의 잘못된 이론에 반박을 가하면, 다락방을 접목시킨 기존교회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그 질문에 답을 해 줍니다.

교회가 나서서 그들의 이단성을 드러내야 하는 지금, 오히려 교회의 부흥의 목적으로 다락방을 도용한 교회들이 이단(다락방)을 숨겨주고 있는 꼴입니다.



2. 그들의 "전도와 복음 메세지(예수는 그리스도시다)" 를 강조



■ 빗나간 강조


이 부분은 다락방을 이단이라고 비판하는 사람들로 하여금 주춤하게 만듭니다.

"예수가 그리스도"라고 분명히 말하는 그들 앞에서 확신이 없어져 버립니다.

왜냐면 성경 고린도전서 12장 3절(하) 에 "성령으로 아니하고는 예수를 주시라고 할 수 없느니라"고 분명히 적혀 있기 때문입니다.


다락방은, 다른 이단들처럼 교주를 메시아라고 하지도 않습니다.

그러나 저는 여기서 배운 사람으로서 분명히 말할 수 있습니다.

그들은 류광수씨를 메시아라고 부르지는 않지만, 다락방의 '전도 메세지'에 예수 그리스도라는 이름표를 달아놓고, 그 프로그램을 만든 류광수를 드높이고 있습니다.

아버지를 류광수로 드높이고 있습니다.

아버지는 류광수요, 아들은 전도 프로그램이고, 그 프로그램의 이름은 예수 그리스도인 것입니다.

동명이인의 이름표입니다.

그 이상한 메시지를 옹호하는 근거로 예수님의 이름을 도용한 것입니다.

다락방은 "하나님은 준비된 전도자에게 구원받아야 하는 영혼을 붙이신다." 고 말합니다.

"그 준비는 누가 어떻게 시키는 것입니까?"

이 질문을 기억하면서, 그들의 메시지를 들어보면, 그들이 류광수를 얼마나 높이고 있는지 분명히 알 수 있게 됩니다.



■ 이곳에만 진리/구원/비밀이 있다.


다락방의 메시지를 듣다 보면, 준비된 전도자는 류광수의 전도프로그램으로 양성된다는 내용을 당연스럽게 받아들이게 되고, 다락방 전도 프로그램을 대단하게 생각하게 됩니다.

다른 곳에선 절대 들을 수 없는 메시지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곳만이 그리스도의 비밀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구원의 비밀이 있다고 굳게 믿습니다.

그 비밀을 말해주고 그 프로그램을 만든 사람이 바로 류광수 씨라고 계속해서 말합니다.

그 곳에 가보면 아실 겁니다.

전 그 전도 합숙 훈련 내내 그 얘기를 귀가 아프게 들었습니다.

심지어 이런 말까지 합니다.


"다락방(복음 메시지) 아니면 영적문제가 해결이 안된다." 고 합니다.


이와 더불어서 다락방이 스스로 이단임을 나타내는 말에는 여러가지가 있습니다.


"복음이 있다 없다"


구원상태는 판단하는 말과 "재영접 해야 한다" 는 말입니다.

다락방의 전도대상자에는 새신자 뿐만 아니라, 기존 신자(다락방 복음 메세지는 모르지만, 구원 받았다고 말하는 성도)들도 포함됩니다.

물론 기존신자 중에는, 교회도 건성으로 다니고, 구원의 확신이 없는 사람들도 있긴 하지만, "복음이 없는 목사가 많다. 복음의 비밀을 모르는 목사 장로 집사들이 너무 많다." 라고 하면서 재영접을 해야 한다고 말하는 것은 틀린 것입니다.



■ 자기 중심적인 판단/정죄


복음을 모른다고 판단하는 기준이, 다락방 복음 메세지를 아는지 여부에 있습니다.

그들이 말하는 복음 메세지를 잘 모르거나, 그것대로 대답하지 못하면 "복음이 없다" 혹은 "그리스도의 비밀을 모른다" 고 말하면서, 영접을 다시 해야 한다고 합니다.

매일 예수님을 구주로 고백하는 신앙고백과는 분명히 다른 의미입니다.


"복음이 없다" 는 말은 "구원받지 못했다."는 의미입니다.


그들이 말하는 복음 메세지는 하나님이 전하라고 하신 복음과는 다릅니다.

세부적으로 기존 교회가 말하는 '복음'과 '창세기3장 문제(사건)' 라는 두 가지 내용을 포함합니다.

복음의 내용은 "예수는 그리스도시다. 그리스도는 기름부음을 받은 자라는 의미이다. 선지자, 제사장, 왕으로 오셨으며, 선지자로 오셔서 하나님을 만나는 길을 내셨고, 왕으로 오셔서 사단을 결박하셨으면, 제사장으로 오셔서 우리의 죄 문제를 해결하셨다. 이 분을 영접하면 구원받는다" 입니다.



■ 특정 구절의 지나친 강조를 통한 이용/악용/확대해석


'창세기 3장 문제 혹은 사건' 을 간단히 설명하면,

"아담과 하와가 뱀에 속아서 하나님께 죄를 짓고, 하나님을 떠났다. 그러나 창3:15에 사단의 머리를 상하게 하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죄 문제를 해결하셨으므로, 우리는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 고 말합니다.

참으로 복음자체를 말하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이들의 문제는 이 메세지가 마치 다락방에만 있는 것처럼 가르치는 것과 이 복음을 창세기 3장 문제와 잘못 결부시켜 해석하여, 예수님의 구원사역을 헛것으로 만들어 버린다는 데 있습니다.


그들의 주장을 예를 들어서 말해 보겠습니다.

한 사람이 문제를 만나면, 그 문제를 창세기 3장 문제에 맞춰서 바라봐야 한다고 말합니다.

그 문제를 창3장 문제로 바라보지 못하면 원인을 알 수 없다고 말합니다.

원인도 모르고 고난받게 된다고 말을 합니다.


다락방에서 훈련을 받다보면, 어떤 문제를 만난 경우 이렇게 해석을 합니다.

"내가 하나님께 불순종하고 죄를 짓고 하나님을 떠나서 이런 문제를 만나 고난을 받는 것이다. 그러나, 예수님이 십자가 위에서 해결하셨으니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하나님이 이미 해결하셨다. 사단을 예수님의 이름으로 꺽으면 된다"

라고 말합니다.

이렇게 해석할 줄 알면, 창 3장 문제의 눈(영적분별력)이 열렸다고 합니다.

언뜻 보면 맞는 해석 방법인 것 같지만 분명히 틀립니다.

마치 할머니들이 집안에 문제생기면, “내가 지은 죄가 많아서..." 라고 말하는 것과 같습니다.


현재 구원받은 사람이 만난 모든 문제의 원인을 구원 이전의 사단에게 종노릇하던 때의 죄에서 찾는다는 것입니다.

이는 틀린 얘기입니다.

구원받기 전에 그 사람에게 역사했던 사단과 죄는 예수님을 구주로 믿고, 영접하는 순간 그 사람과는 상관이 없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크리스챤을 새로운 피조물로 하셨습니다.

고후5:17말씀처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것이 되었도다." 라고 하셨습니다.

이전의 모습을 지워버리려고 노력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과는 상관없는 새 사람이 되는 것이 바로 구원입니다.


근데 다락방은 구원의 이전의 모습에서 현재의 문제원인을 찾습니다.

구원 받아 지식까지 새롭게 된 새사람이 겪는 문제는, 하나님께 기도로 아뢰고 성경말씀을 읽고 하나님께 해결을 받으면 되는 것이지, 이전의 죄와 사단에게 종노릇했던 삶에서 원인을 찾아야만 해결을 받을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이들이 자꾸 창3장을 들먹이는 것은, 이전 사단의 권세 아래서 종노릇했던 때를 영영 잊지 못하게 하여, 사단을 두려워하게 하고 하나님의 자녀로서의 축복을 제대로 누리지 못하게 하는 무서운 사단의 짓입니다.



■ 가상의 적을 지나치게 위협


이로써, 다락방은 은연중에 사단을 기억하고 늘 두려워합니다.

물론 사단을 기억하지 말라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늘 깨어 근신하며 사단을 대적하라고 싸우라고 하셨고 예수님께서 다시 오실 때 그분이 사단을 무저갱에 빠뜨리신다" 고 하셨지 결코, 박살내어 진멸시키라고 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사단을 박살내야 한다고 하면서 아주 만만한 존재인 것처럼 떠벌리지만, 다락방은 사단을 무시하는 것이 아니라 두려워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사단을 대적할 뿐이지 없애지는 못합니다.


이는, 이미 교계에서 이단성의 근거로 지목한 부분으로서, "성경 66권이 모두 마귀진멸을 조명하고 있다"고 주장하는 다락방의 이단성을 지적하고 있는 것입니다.

물론, 이 내용은 기독론과 연관은 되지만, 성경 근본 핵심이 마귀진멸이 아니라, 죄인의 구원에 있다는 사실을 오해한데서 기인한 것입니다.


또한 사단은 예수보혈과 그 이름의 권세로 꺾는 것이지 류광수의 메시지로 파악한다고 꺽이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사단을 예수권세와 이름과 보혈을 의지하여 꺾을 수 있습니다.

사단에 대한 언급을 많이 하면서, 꺾어야 하는 무서운 존재로 부각하고, 그 사단이 마치 류광수 메시지(창 3장 문제를 보는 눈) 앞에서 꺾이는 것으로 주입시키고, 은연중에 그 메시지를 정리한 류광수를 높이고 있습니다.



■ 자기 중심적인 구원론에 따른 판단 / 극단적 이분법 사고


다락방 복음메세지와 연관된 또 하나의 문제는, 이 메시지를 기준으로 다른 사람의 구원상태(영적상태)를 판단한다는 것입니다.

다락방은 전도할 때, 숙지한 똑같은 복음 메세지를 전하고, 이 메시지를 기준으로 다른 사람의 구원상태를 판단합니다.

기존 신자에게 "예수가 그리스도라는 의미가 뭐냐?" 고 물어서, 그 사람이 이 메세지대로 설명을 잘 못하면, "복음이 없다.." 고 합니다.

심지어 "그 자신이 구원 받았다."고 말을 하더라고 "그것은 구원받은 것이 아니다." 라고 합니다.

혹은 다행히 복음을 설명해도 두서 없거나 정확하지 않다면, "복음이 정리되지 않았다" 거나 "복음이 아직 확립되지 않았다." 고 말합니다.


그들의 논리를 따르자면, 그곳 메시지로 공부하지 않으면 구원받지 못하고 구원의 확신도 가질 수 없으니, 무식한 사람은 절대 구원받을 수 없습니다.


하나님은 엡2:8~9에 오직 그 은혜를 인하여 믿음으로 구원받는다고 하셨는데, 그들은 감히 이런 억지논리를 서슴없이 가르칩니다.

이런 식의 구원상태 확인은 새신자를 '영적 가짜' 로 만들 위험이 높습니다.

복음서에서, 예수님은 혈루병 걸린 여인이 그분의 옷자락을 만진 믿음을 보시고 "네가 구원을 얻었다." 고 하셨습니다.

복음을 아는 것과 믿는 것을 혼동하고 있음이 분명합니다.



■ 자기 기준에 따른 영적성장/수준/성숙의 재정의



다락방은 그들의 프로그램 단계를 크리스챤의 성숙단계와 일치시키고 있습니다.

류광수가 만들어 놓은 전도 프로그램으로 훈련되는 것이 전문화되는 것으로 착각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고린도전서 4장말씀에, "주께서 오시기전까지 아무것도 판단하지 말라" 고 하셨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다락방 메세지를 기준으로 다락방 이외의 교회와 성도를 판단하고 정죄하고 있습니다.

"전도요원, 영적 엘리트, 그리스도 전문가가 되어야 한다."

"성도가 전도하기 전에 그리스도의 비밀을 누리면 살아 계신 주님은 반드시 역사하십니다."

"훌륭한 사람은 많은데 그리스도의 전문가가 적습니다. 이것이 세상의 문제 입니다."

라는 말은 그들의 생각이 얼마나 잘못된 것인가를 알려주는 근거가 됩니다.



■ 성령 소멸/훼방, 은사 무시


그들은 "다락방전도 합숙훈련" 교재에 그들을 설명하기를

"다락방 전도란, 우리가 처해 있는 현장에 하나님의 목적과 계획이 있는 줄 믿고, 전도지역에 들어가서 전도활동을 펴기 위한 생명운동을 말하며, 이 운동은 초대교회 마가 다락방에서부터 시작된 운동입니다."

라고 하면서, 그들의 영적 권위와 근거를 '초대교회 마가 다락방' 에 두지만, 그 순서에 교묘히 다락방 전도 프로그램을 삽입하여 성령님을 무시합니다.

즉 "예수님 승천하시고, 기도에 전심하다가, 성령체험하고 각기 다른 방언을 하며, 복음을 깨달은 초대교회의 마가 다락방을 류광수의 다락방 이론에 왜곡시켜 적용합니다.

기도에 전심하는 이전단계에 류광수의 전도 프로그램을 넣어서, 전도 프로그램으로 그리스도를 알고 누리면, 전도요원(준비된 전도자)이 될 수 있으며, 그분의 계획과 뜻에 방향 맞춰 기도하면, 성령이 역사 하신다는 이상한 논리를 폅니다.

"우리가 하나님과 방향 맞추었으니 되어질 수밖에 없다."

"하나님은 우리로 하여금 되어지게 하실 수 밖에 없다"

라는 식의 엉뚱한 논리를 무슨 비밀인양 가르쳐서 성도들을 미혹시킵니다.

이로써, 하나님의 말씀 위에 그들의 전도프로그램을 놓았고 성도로 하여금 하나님의 말씀을 읽지 않도록 만들었습니다.



■ 폐쇄고립된 단체 내에서 엘리트의식 / 우월감 / 자긍심 / 자아도취 / 교만한 마음을 심음



또한 다락방 핵심 목사 밑에서 훈련받는 성도들은, 전도요원이라는 말에 완전히 세뇌되어, 자신들을 비밀요원으로 여깁니다.

저 또한 그렇게 착각을 했었습니다.

류광수는 자신의 생각을 근거로 쓴 거짓논문인 전도프로그램으로 기가 막힌 이단을 만들어냈습니다.

그들은 용어를 교묘하게 사용하여, 비판에 대한 변명의 여지를 곳곳에 심어두고는,

"그리스도도 있고, 복음도 있다. 전도까지 한다. 증거가 여기 있는데, 왜 이단이냐!"

라고 반박합니다.

교묘하지요.

동일하게 해석된 말씀을 숙지하고, 각 프로그램을 마친 사람들을 복음으로 무장된 '일류복음전도자, 영적 엘리트' 라고 부추깁니다.

대학에선 전문적 분야에 파고 들어가야 한다고 말하고, 각 교회에서는 지역을 현장을 삼으라고 하며, 유치원생, 초등학생, 중학생, 고등학생, 일반성도들에게 다락방모임을 만들고 그 메세지를 전하는 방법을 알려줍니다.

심지어 메시지 전하는 시간의 사용과 분배까지 알려줍니다.

메시지 전하고는 성도들이 남아서 여담을 하는 것을 막으라고 합니다.

왜냐면 이때 목사에 대한 욕을 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라고 알려줍니다.

전도훈련을 몇 단계로 나누어 실시하고 이들을 훈련시킵니다.

그러나 이 프로그램에 온 사람 중에는 다락방이 주최하는 것이란 사실도 모르고 오는 사람이 많습니다.

이 전도훈련 프로그램을 수련회로 알고 참여한 후, 비로소 다락방이란 사실을 알게 됩니다.

전도훈련비도 4박 5일에 20만원을 받습니다.

선교비가 포함되어 있으므로 비싼 것이며, 물가 상승한 것을 고려할 때 오히려 적게 받는 것이라고 말을 합니다.

다른 사람에게 전도합숙훈련을 소개하는 사람은, 자신도 처음에 그렇게 암암일에 듣고 왔고, 와서 알았기에 은연중에 똑같은 방법으로 다른 사람들에게 전합니다.

그들은 다락방에 대해 속시원하게 말하지 못합니다.



■ 조직내의 은폐 / 기만 / 감시 / 조종 / 통제 / 탈퇴방지를 위한 정죄,죄책감


계속 속이고 감추는 모습이 어이가 없습니다.

그들의 실체가 드러날까봐 서로 쉬쉬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그들 자신조차도 스스로를 설명할 수 없게 되어, 막연히 "진리겠지..." 하며 속아 넘어 갑니다.

그리고 다락방에 대해 자세히 알고자 하는 사람에게 정죄감을 줍니다.

종국에는 다락방을 의심하는 것은 마치 예수님을 의심하는 것처럼 느끼게 만들며, 다락방을 나가는 것은 예수님을 떠나는 것 처럼 느끼게 합니다.

이것이 류광수 다락방의 실체입니다.



■ 성경 보다 자신의 메세지 강조


다음으로 그들이 주장하는 일반 메세지의 문제점을 말하겠습니다.

그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전면으로 하여, 그들의 메세지를 '복음자체'라고 하고, '복음메세지' 라고 부릅니다.

복음을 전하는 것이 아니라, 복음 메세지를 전한다고 합니다.

이러한 다락방의 복음 제세지는 크게 전도때에 사용하는 기초복음메세지(=복음편지) 와 일반 메세지 로 나눌 수 있습니다.

성경말씀을 기초로 하여 만든 내용이라고 하지만, 이들의 메시지는 하나님의 자녀가 하나님의 말씀을 읽는 것을 방해합니다.

그 메세지에 맞춰서 성경을 읽게 하고, 나중에는 메세지만 붙잡도록 합니다.

다락방 목사들은 "성경을 읽어라" 고 하지 않고 "메세지를 잡아라" 고 말을 합니다.


기존 교회의 설교말씀의 역할과 성경읽기가 다락방에서는 어떻게 왜곡되어 행해지는지 설명해 보겠습니다.

기존 교회 목사님의 설교말씀은, 하나님의 말씀을 바탕으로 하여 하나님의 속성을 말하며 우리가 어떻게 신앙생활을 해야 하는지 알려주는 몽학선생의 역할을 합니다.

성도가 하나님과의 교제를 계속적으로 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역할을 합니다.

물론 성도는 설교말씀을 듣고 성경에 대한 깨달음을 얻지만, 궁극적으로 목사님의 설교는 성도가 하나님의 말씀을 읽도록 도와주는 역할을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성경에선 말합니다. "어느 누구도 너희를 가르칠 필요가 없으며 성령으로 기름부어 깨닫게 하신다" 고 하셨습니다.


그러나 다락방은 다릅니다.

다락방은 매주 집회에서 메세지가 선포되면, 학생들은 그 메세지를 적어서 그것이 현장안에서 어떻게 성취되는지 적용하고 확인하려 합니다.

메세지는 목사가 성경말씀을 읽고 해석한 것입니다.

"목사가 말씀을 해석할 수 있지 않은가?" 라고 반박하실 수 있을 겁니다.

당연히 그럴 수 있지요.

그러나 문제점은 다락방 신도들은 그 목사의 해석대로만 성경을 바라보도록 훈련이 된다는 것입니다.

이는 스스로 말씀을 읽고 주님이 주시는 은혜를 받는 것을 잊어버리게 하고, 그냥 하나님의 말씀을 참고서적쯤으로 여기게 하고, 그런 말씀이 있는지 여부만을 확인하게 만들며, 메세지와 말씀확인을 말씀읽기로 착각하게 만듭니다.



■ 다락방 목사의 메세지의 구조 - 주객전도(메세지가 주 / 성경이 참고서)



다락방 교재를 보았거나, 메세지를 들어본 사람은 알겠지만, 성경책과 반대 구조를 하고 있습니다.

성경말씀에 대한 목사의 생각이나 깨달음이 적혀 있고 그 옆에 근거로서 성경말씀의 장, 절이 적혀 있습니다.

그 아래나 옆에 작은 글씨로 주석이 달려 있습니다.


그러나 다락방의 메세지는 성경말씀을 주석처럼 사용합니다.

인용구절을 읽지도 않습니다.

어쩌다가 부분적으로 잠시 인용할 뿐입니다.

이런 메세지는 참으로 성도의 영적성장에 악영향을 줍니다.

왜냐면, 처음에 다락방 메세지를 듣는 사람은 그 말씀 구절을 찾아 볼 수도 있겠지만, 점차 말씀 확인은 이뤄지지 않고, 나중에는 목사가 어떤 말을 하건 그냥 믿어버리게 되는 것입니다.

성경에 보면, 사단도 하나님의 말씀을 인용하지만, 이는 예수님이 말씀을 인용하신 것과는 전혀 다른 것입니다.

그들은 그들의 논리를 합리화하기 위해 말씀을 도용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것이 아니라 악용합니다.

인용된 구절을 하나님이 어떤 의미에서 주셨는지 설명도 하지 않고, 엄청난 양의 말씀 장절을 근거라고 제시하여 성도로 하여금 말씀중심의 메세지로 착각하게 하며, 덮어놓고 메세지를 믿게 만듭니다.


이 결과로 하나님의 말씀은 읽지 않고 메세지만 읽게 됩니다.

다락방에서 공부한 사람중에 "나는 다락방 와서 오히려 말씀을 더 많이 읽게 되었다" 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그 사람은 착각하고 있는 것입니다.

다락방의 사람들이 "말씀을 읽었다" 말하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은 성경을 읽은 것이 아니라, 그들이 들은 메세지를 기준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확인한 것이라고 하면 정확한 표현입니다.

성경은 살아 계신 하나님의 말씀(히4:12)으로 자신의 문제나 처한 환경에 따라 읽을 때마다 감동과 깨달음은 다를 수 있습니다.

그때마다 역사 하시는 성령님의 도움으로 깨닫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 획일적 사고 / 극단적 사고 / 획일적 통제,적용,체크


그들은 성경말씀을 해석해 준 목사의 메세지를 성경말씀인양 생각하고, 그 메세지에 이끌려 다닙니다.

그래서 다락방 학생들과 목사사이에선 이런 말이 나돕니다.

"메세지 끊기면 힘들다. 영적으로 갈급하다." 고 합니다.

그들은 일관된 해석방안을 정해 놓고 그 말씀 그 부분은 우두머리 목사이건 전도사건 평신도이건 간에 똑같이 인용하고 똑같이 적용하니 무슨 은혜가 되겠습니까?

겉보기에는 확실한 것 같지만, 빈쭉정이입니다.


 

by 活死人 | 2010/10/13 11:48 | 다락방(류광수) | 트랙백 | 덧글(0)

다락방 탈퇴자의 간증 (2)


3. 기도에 대한 가르침


하나님은 골4:2 말씀에서 "기도를 항상 힘쓰고 기도에 감사함으로 깨어 있으라" 라고 하셨습니다.

기도는 하나님과의 대화이며, 영적 호흡입니다.

그러나 다락방은 기도를 간단히 하라고 합니다.

오직 하나님과 방향 맞춘 간단한 기도를 하라고 합니다.

이는 중언부언하지 말라는 의미와 다릅니다.


"등록금 달라, 옷 달라. 냉장고 달라 집을 달라고 하지 말고, 그냥 돈 달라고 하고, 가장 큰 전도에 맞춰 기도해라. 길게 장황하게 하지 말고, 세계복음화에 맞춰서 기도하고 전도해라. 하나님은 되게 하신다. 하나님은 그 분의 뜻에 맞추면 문을 여신다. 밥 세끼 먹을 시간도 없을정도로 바빠진다. 기도 길게 할 시간이 어디 있느냐 나가서 전도해라!" 라고말합니다.

겉으로는 그럴듯해 보이지만, 궁극적으로 기도를 끊어내고, 성령님을 무시하고 앞서가는 다락방 전도프로그램에 맞춰진 전도에만 전력하게 만듭니다.

"하나님의 뜻에 맞춰서 기도하면, 응답이 온다고 한다" 는 의미와는 다릅니다.

부르짖는 기도를 무시합니다.


"더 큰 것을 구해라" 라고 하면서 전도라는 가장 큰 것을 붙잡으면 나머지는 다 따라오게 되어 있다고 말합니다.

목표를 가장 큰 것에 두라고 하면서 "전도지상주의"를 외치고, 기도의 간략화를 강조하여 하나님과의 관계를 소원하게 만들어, 이름만 자녀인 채권자로 전락시킵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하늘의 복으로 채우셨다고 (엡1:3) 하셨지만, 그렇다고 우리가 빚쟁이처럼, 가서 내놓으라고 할 수는 없습니다.

채권자가 아니란 것이지요.

그들은 하나님이 허락하신 은혜를 구하는 것이 아니라, 약속했으니 내놓으란 식의 기도를 합니다.

영의 양식인 하나님의 말씀을 읽지도 않고, 영적 호흡인 기도도 하지 않으며, 다만 다락방이 주는 메시지대로 "내가 하나님 소원대로 전도하니 복으로 채우라"는 식의 기도하게 하니, 하나님이 기뻐하실리 없습니다.


그리고 기도하는 방법도 왜곡합니다.

다락방 목사의 말을 예로 들면,

"천사가 저를 지키는 방법을 생각해 봤는데, 밤에 기도할 때, 기도를 하고 나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하는 부분을 하지 않고, 그냥 자면 그 천사는 기도가 끝나지 않았기 때문에, 제가 자는 동안 기도를 담아 올라가는 금향로를 들고, 내 머리맡에서 저를 지키고 있을 수 밖에 없습니다. 아침에 일어나면, 저는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합니다. 그러면 그때서야 천사가 올라가겠지요.."

라고 말했습니다.

이런 얘기를 하면, 어떤 사람은 농담이냐고 하겠지만, 농담이건 진담이건 간에 하나님께 드리는 기도를 왜곡시키는 것은 잘못된 것입니다.



4. 천사동원설

 


다락방의 이단성이 여실이 드러나는 부분입니다.

다락방은 천사를 자신들이 부릴 수 있는 영이라고 말합니다.

바울 선생이 그렇게 성경을 쓰지 않았냐고 하면서 근거를 삼습니다.

물론 히브리서 1장 14절에 "모든 천사들은 부리는 영으로서 구원을 얻을 후사들을 위하여 보내심이 아니뇨" 라고 쓰여 있습니다.

그런데 다락방은 이 말씀을 잘못 해석하여

"우리가 이 천사를 불러서 일을 시킬 수 있습니다. 시키십시요."라고 합니다.

종 부리듯 부를 수 있다고 말을 합니다.

참으로 기가 막힙니다.

아브라함이 천사를 보고 그 앞에 엎드린 것과 삼손의 부모가 천사 앞에서 어떻게 행동했는지를 봐도 이들의 주장은 억지라는 것을 알 수 있을 겁니다.

천사는, 엘리사에게 불말과 불병거를 동원하시고, 엘리야에게 물과 떡을 먹이려고 보내신 것처럼, 우리를 섬기라고 하나님이 동원해 주시는 것이지, 우리가 부르는 것이 아닙니다.

다만 동원해 주시도록 기도로 간구할 수 있는 것입니다.

절대 우리가 호령하여 부리는 것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5. 기존 교회 비방


기존 교회의 98%가 잘못 되었다고 주장합니다.

간증을 들어보면 이들이 얼마나 거짓된지 단번에 알 수 있습니다.

다락방전도 합숙훈련에 가면, 주 강사 목사의 메세지 시간 사이의 쉬는 시간마다, 다락방 전도사가 끊임없이 간증을 합니다.

자신의 간증이나 혹은 다락방의 어떤 성도의 간증을 합니다.

그런데, 간증의 내용이 참 이상합니다.

구원전후가 아니라, 다락방 만나기 전후라는 표현을 씁니다.

일반적인 간증은,

"내가 예수님 만나기 전에는 이러했는데, 예수님 만난 이후에는 이렇게 변했다." 고 하지만,

다락방 사람들은

"내가 다락방 만나기 전에는 이렇게 신앙생활 했는데, 다락방 만나고 나서 이렇게 바뀌었다. 다락방 만나고 나서야 비로소 복음을 알았다." 라고 합니다.

그러면서, 다락방이전 기존교회에서의 신앙생활을 끊임없이 비판합니다.

심지어 40일 금식기도를 여러번 하시는 어머니(목사)의 신앙을 아주 우습게 만듭니다.

이유는 복음도 모르고 기도만 하면 뭐하냐는 것입니다.

신앙은 고백하는 것이지, 자랑하는 것이 아닙니다.

40일 기도를 아주 무식쟁이들이나 하는 것으로 취급하고, 울며 부르짖는 기도를 무당이 굿하는 것처럼 하찮게 취급합니다.

물론 제 뜻대로 자랑하려고 금식기도를 하면 안되지만, 그 금식기도자체는 하나님께 더 가까이 가려는 몸부림이고, 하나님께서 기뻐 받으시는 산 제사라 생각합니다.

다락방은 쓸데없는 기도를 길게 하지 말고, 짧고 간략하게 하고, 오직 전도라는 큰 목표를 잡으라고 합니다.

그럴듯하지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는 마6:33절까지 인용하면서 설명하니 너무나 그럴 듯 하지만, 이런 말을 쉽게 하는 것은 기도가 영적 호흡이라는 사실을 간과하기 때문에 가능한 것입니다.


이렇게 하나님과의 영적 대화를 무시하는 것은, 하나님과의 교제를 우습게 여기고 있는 다락방의 생각을 증명해 주는 것입니다.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역사 하셨던 하나님이 지금도 살아 계셔서 우리에게 역사하신다는 것을 은연중에 부인하는 것입니다.

성경은 하나님의 유서가 아닙니다.

지금도 살아 계신 하나님의 살아있는 말씀입니다.(히4:12)

기존교회를 비방하려는 목적으로 함부로 말을 하다가 성령님을 부인하는 중죄를 짓고 있습니다.


저는(다락방 전도합숙훈련)에서 분명히 들었습니다.

"기존교회는 예수님을 정확히 전하지 못한다. 예수님을 예레미야로 여기는 교회는 박애주의 교회가 되고, 세례요한으로 여기는 교회는 사회운동을 하며, 엘리야로 여기는 교회는 신비운동을 한다. 그러나, 다락방은 예수는 그리스도시며,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라는 사실을 정확한 복음으로 제시한다."고 말하고 있으며, 덧붙여서 "조용기 목사님의 성령운동은 변질되어 이제 끝났고, 그 성령운동하는 사람들 중에 아직 복음에 깨어있는 사람들을 하나님이 따로 불러서 세운 것이 바로 다락방이다. 이제는 류광수 목사의 전도운동이 시작되었다"고 말하면서, 류광수 목사에 대한 찬사가 이어집니다.

기존교회는 폐단이 너무 많다고 비판하면서 복음은 다락방에만 있는 것처럼 말을 합니다.


"류광수 목사는 전도에 목숨을 건 분이다. 이 복음 메세지를 정립하여 전하는 분이시다. 여러분도 이 메세지를 잡으면, 류광수처럼 전도의 전문가가가 될 수 있다."

라고 주장합니다.

사도 바울이 화를 내면서, "너희중에 나는 아볼로에게 나는 세례요한에게서 나는 바울에게서 라는 말이 있는데, 그리스도가 갈리웠느냐!!" 하고 자신의 이름이 본의 아니게 그리스도의 영광을 가린 것에 분노하고 책망한 이유를 알 것 같습니다.



6. 성령 무시 / 소멸


"성령운동이 끝났다" 는 말을 함부로 하여 그들 스스로 이단임을 증명합니다.

이 말은 그들이 성령님을 인정하지 않는다는 증거가 됩니다.

제 발등을 찧는 실수를 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자신들의 전도운동을 설명하면서 행1:8절을 자주 인용합니다.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행1:8)"

에서 성령이 임하시면 그 다음에 권능을 받는다고 하나님이 그러셨는데, 그들은 성령운동은 끝났다고 성령님을 무시하면서도, 전도운동은 이뤄진다고 하니 어불성설입니다.

이는 그들이 성령님의 인도하심을 따르는 것처럼 말은 하지만, 실제는 그렇지 않다는 그들의 본심을 보여주는 말입니다.


여기에 그들의 이단성이 여실히 나타납니다.

다락방 메세지가 권능을 주는 것처럼 주입시키고 이 프로그램을 잘하면, 권능이 생긴다는 식의 논리를 펴고 있는 것입니다.

"성령운동은 끝났다! 이제 전도운동이다!" 가 말이 됩니까?

성령님은 지식(프로그램)을 확인하고 오는 것이 아닙니다.

성령세례는 은사요, 은혜입니다.

다락방은 성령님을 인정하지 않을뿐더러, 성도로 하여금 성령님에 대해 오해하게 만들고 있습니다.

행1:8 에서, "증인되리라" 는 부분은, 하나님이 "증인이 되게 하시겠다."는 그분의 의지를 말하는 것이라고 하면서, 우리가 언약을 붙잡았으니 하나님은 우리를 그렇게 증인되게 할 수 밖에 없다는 식의 논리를 폅니다.

성도들(학생들은)은 이런 논리를 '영적원리의 발견' 이라고 합니다.

이는 하나님이 약속하셨으니 될 수밖에 없다는 식의 논리로서, 강한 믿음처럼 보이지만 하나님이 아닌 류광수에게 영광을 돌리게 하는 교묘한 이론입니다.

하나님이 주실 수 밖에 없다는 사실을 발견한 사람이 류광수라는 것이지요.

대외적으로 배포되는 유인물에는 류광수 목사를 찬양하는 글은 없지만, 메세지를 전하는 목사와 전도사의 입으로 전해집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만홀히 여김을 받으실 분이 아닙니다.

다락방은 성령의 능력과 역사(전적인 하나님의 절대 주권으로 주시는 선물인 성령의 은사와 그 능력)앞에 그들의 전도 프로그램을 놓고, 하나님의 능력을 자신들 밑으로 내려놓습니다.

이런 다락방의 주장은 성도들로 하여금 하나님을 시험하게 만듭니다.

사단이 예수님께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뛰어내리라" 고 하여 예수님으로 하여금 하나님을 시험하도록 유혹한 것처럼, 다락방은 하나님의 말씀을 다락방 메세지에 인용하여 성도들이 하나님을 시험하게 하는 중죄를 짓도록 유혹하는 사단의 짓을 하고 있습니다.

대학생들에게 전문분야로 침투하여 전도해야 한다고 말하면서 "너희가 언약을 붙잡고 증인이 되었기에 하나님은 너희를 그 분야에 영향력 있는 사람으로 세우실 수 밖에 없다" 고 말하면서 노력하여 공부하는 것에 안일하게 만듭니다.

학생들이 "어차피 하나님의 시간표에 맞춰서 되어지는 것이기 때문에 내가 조금 더 노력한다고 되는 것이 아니다" 는 생각을 하게 만들고 그렇게 자꾸 세뇌시킵니다.

더 정확히 말하면 다락방의 복음 메세지를 모르고 노력해 봤자 될 수 없다는 논리를 펴는 것입니다.


모든 것에 앞서서 "그리스도의 비밀을 알아야 한다" 고 말합니다.

그리스도의 비밀은 오직 류광수의 메세지를 통해 알 수 있다고 합니다.

하나님의 자녀가 하나님의 말씀을 읽고 기도하여 그분의 뜻을 알고 그분이 주신 달란트를 발견하여 개발하고 그 분이 주시는 능력으로 열심히 최선을 다해 공부해야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을 읽기 앞서서 먼저 그리스도의 비밀을 알아야 한다고 하니, 이것이 얼마나 억지입니까!

그리고 결과가 나쁘면 아직 하나님의 시간표가 아니기에 안되었다고 말하거나, 그 사람은 아직 복음이 확립이 되지 않았기 때문에 그렇다고 말을 합니다.



7. 합력하여 선을 이루고 사랑해야 하는 지체들의 영적으로 죽어가는 현상


 

다락방은 성도들에게 전도요원이 되어야 한다고 주장하는데, 요원이란 무슨 의미입니까?

다락방은 우리가 그리스도를 머리로 한 지체(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라는 하나님이 주신 계명에 합당한 뗄 수 없는) 임을 망각시키고 서로가 메세지로 연결되어 있는 단순한 전도요원으로 인식하게 만들어서 자신들의 형상을 바꿉니다.

하나님의 자녀가 하나님의 형상을 닮아가도록 도와주는 것이 아니라, 류광수를 닮는 영적 전문가가 되도록 세뇌시키니 문제가 아닐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말씀보다 류광수의 전도 방법을 좇습니다.

말씀이 끊어지게 하고, 대신 메세지를 주고 프로그램을 다 마치면, 하나님이 기뻐받으시는 하나님의 전도자가 되는 것처럼 말을 하지만, 기도와 말씀이 끊긴(양식과 호흡이 끊긴) 기아상태의 고아를 만들어 버리고, 영적으로 류광수 앵무새를 만들고 맙니다.

북한 공산당은 소수이고, 나머지는 인민입니다.

인민들에게는 "재산의 공동소유를 기초로 하여 더 합리적이고 정의로운 공동사회를 실현하자" 고 주장하지만, 인민은 죽어가고, 공산당만 잘 먹고 잘 삽니다.

결과적으로 공산당은 열매가 없이 무너졌습니다.

공산당 밑의 인민들이 죽어 가는 모습과 다락방의 성도들이 죽어가는 모습은 흡사합니다.

북한은 인민들이 육적으로 서로 잡아먹는 단계까지 이르렀습니다.

류광수의 메세지에 세뇌되어 비판하고 평가하고 정죄하여 영적으로 잡아 먹는 곳이 바로 이 다락방입니다.

같은 지체를 보면서, "복음이 있다 혹은 없다. 영접을 제대로 해야 한다. 영적인 문제에 시달리고 있다." 는 식의 비판과 정죄를 하느라 정신 없습니다.

그 비판이 훈련이라고 생각합니다.

지체끼리 믿고 사랑할 수 가 없으며, 다른 사람에게 비판받지 않기 위해 더 잘 비판해야 하고, 상대방 위에 서야 하는 강박관념에 잡힙니다.

왜냐면, 영적 그리스도의 전문가가 되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지도 목사들이 하는 말이

"너희들이 갖는 영적 문제는 창3장 문제라는 관점으로 보지 않으면 해결이 안된다. 다락방 메세지가 아니면 영적 문제 해결이 안된다."

라고 하지요.

그러면 성도들은 그들이 말하는 영적 문제를 해결 받고자, 창3장 문제의 눈으로 현상을 제대로 보게 해 달라고 기도하면서, 메세지를 더 갈급히 바라보게 되며, 자연히 그 메세지를 만든 류광수 목사를 높이게 되는 것입니다.

전도요원이 자신의 궁극적인 이상이 되어 버리는 것입니다.

성도들은 영적으로 죽어 가는 그들의 실제 모습은 알지 못하고, 분별력 없이 계속 빠져 들어갑니다.


다락방 성도들은 목사님에 대해서도 류광수의 메세지(프로그램)에 맞춰서 쉽게 판단합니다.

심지어 인도하시는 목사님도 전도프로그램을 통해 먼저 공부한 요원일 뿐입니다.

그래서 나이가 어려도 먼저 그 사실(그리스도의 비밀)을 깨달았다고 자만하고 교만하기까지 하며 정죄하고 판단합니다.

우리는 그리스도를 머리로 하는 지체입니다.

각각의 달란트가 다르고 각자에게 주어진 하나님의 계획이 다릅니다.

그러나 다락방은 너무나 귀한 하나님의 자녀들을 ‘그리스도 전문가' 라는 똑같은 모양의 로봇으로 만들고 있습니다.

한탄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8. 전도 프로그램의 열매가 없다.


다락방은 겉보기에는 부흥이 잘되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것은 허상입니다.

전도합숙훈련안에는 실제로 전도현장으로 나가서 전도하는 훈련이 있습니다.

그날 하루 전도를 통해 영접하는 영혼은 많습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전도를 한 사람들 마음에 기쁨이 없다는 것입니다.

한결같이 하는 말이 전도해서 영접한 사람을 봐도 기쁘지가 않다고 말을 합니다.

전도를 하고 나서 간증하는 것을 봐도, 한 영혼이 하나님께로 돌아온 것에 대한 감격보다는 "내가 전도를 몇 명 했다." 혹은 "복음을 전하니.. 정말 영접하더라" 라는 간증이 대부분으로 곧, 전도 프로그램의 위력을 확인하고 증거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한 영혼을 천하보다 귀하게 여기시는 것을 알고 우리에게 전도하라고 하신 이유를 알고 그 은혜를 누리고 기뻐하는 것이 아니라, 복음 메세지로 전했으니 영접은 당연하다는 식의 반응을 보이고, 진정한 영혼구원에 대한 감사가 없습니다.


위에서 말했듯이 그들이 전도할 때 말하는 기초 복음의 내용은 틀림이 없으나, 그 복음을 류광수 높이기에 사용하고, 영혼 죽이기에 사용하고, 잘못 해석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또한 개척교회 목사님들에게는

"교회가 빨리 성장을 하면 다락방을 오래 못한다. 오랜 시간이 걸려 이뤄져야 다락방 메세지로서 제대로 확립되는 것이다. 금세 성장하면 자기 잘나서 부흥된 줄 알고 다락방을 오래할 수 없다."

고 말을 합니다. 이게 말이 됩니까?

이 얘기에 아멘을 하는 목사님들을 보면서 황당했습니다.

공무원 학원 선생님이 자꾸 떨어지는 학생에게 공무원시험에 빠른 시일에 붙으면 공무원 학원 오래 못다닌다. 공부 내용을 온전히 숙지 할 수 없다." 고 말하는 것과 뭐가 다릅니까?



<결론>



류광수의 다락방은

- 성도들을 전도프로그램(메세지)으로 미혹하여,

- 하나님의 말씀을 읽지 못하게 하고,

- 기도하지 못하게 하여,

- 영적으로 철저히 죽이는 이단입니다.

- 경건의 모양은 있으나, 경건의 능력을 부인하는 자니 이같은 자들에게서 네가 돌아서라(딤후3:5)"는 말처럼 정통 기독교와 가장 유사하게 위장, 성도들을 유혹하고 있습니다.

기존의 이단들은 교주를 메시아라고 하며, 눈에 띄게 그 이단성을 드러내는 반면, 다락방은 교묘하게 위장하여 간접적으로 류광수를 높이고 있습니다.

다락방은 기존 이단들이 힘을 발휘하기에 너무나 드러나고 밝혀졌으니, 이단과 교회 중간에 '그리스도와 복음' 으로 겉포장한 다락방이라는 위장 교회(경건의 모양)을 만들어 놓고, 하나님의 교회를 흉내내어 모이게 한 후, 영혼을 죽이며 경건의 능력(성령, 말씀, 기도등)은 부인하는 무서운 이단입니다.

요즘은 이단이 너무나 난무하여 이단에서 나와 이단으로 들어가는 현상이 비일비재합니다.

이런 원인은 바로 '하나님의 자녀가 하나님의 말씀을 읽지 않고 기도하지 않는 것'에서 기인한다고 생각합니다.

이단이 만들어 낸 이단교리를 분별할 수 있는 영적 기준인 말씀을 모르니 자꾸 속는 것입니다.

가짜를 드러내는 것도 중요하지만, 정확한 말씀이 선포되는 교회가 이 땅에 제대로 세워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위조수표는 너무나 많습니다.

가짜를 분명히 판별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러기 위해서는 진짜를 바로 알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러한 현실을 공격한 것이 바로 류광수의 다락방입니다.


by 活死人 | 2010/10/13 11:46 | 다락방(류광수) | 트랙백 | 덧글(0)

류광수의 다락방의 이단성 (2)

 


3. 교리적인 문제




1) '천사 동원권'과 '기도 응답'에 대한 주장



류씨는 하나님께서 구원받은 이에게 일곱 가지 권세를 주셨는데 그 중에 '천사 동원권'이 있다고 한다.

류씨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천사 동원, 성경에 있지 않습니까?

주의 사자들이 가(서) 기도하는 곳마다 하나님은 주의 천사를 보내가(보내서) 불말, 불병거를 동원시키는데, 성경에 중요할 때마다 나오는데 왜 성경을 부인합니까?

성경에 있어요.

그리고 이 응답을 우리는 지금도 받을 수가 있어요. …

하나님이 순복음 OO교회 주위에 우리 K 목사님과 주의 종의 배후에 하나님은 불말과 불병거를 착 동원시키십니다.

이걸 보는 눈이 없거든.

이런 눈이.

성경 안 믿으니까 뭐!

그러니까 뭐!

왜 류 목사님은 천사 이야기를.

왜 못합니까?

성경에 있는 거를.

하나님께 함(한번) 물어 보세요.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해요.

  

'천사 동원권'에 대한 류씨의 이같은 언급이 논란의 대상이 되면서 그는 신자가 직접 천사를 직접 동원할 수 있다는 의미로 말한 것은 아니라고 주장하였다.

그럼에도 그의 주장에는 성경적 가르침의 한계를 벗어난 요소가 많다.

류씨는 기도하면 하나님께서 천사를 동원하시고, 또 전도하러 가면 천사를 동원하신다면서, 베드로가 옥에 갇혔을 때 주의 천사가 그를 구출한 예를 제시한다.

그러나 그는 사도들이 전도 사역에서 천사의 도움을 전혀 받지 못한 듯한 경우도 많이 있었다는 것을 언급하지 않는다.

우리는 바울 사도가 천사의 도움을 받기보다는 오히려 버림을 받은 것 같은 상황에 처하였던 것을 종종 보게 된다.

그는 말하기를, "내가 수고를 넘치도록 하고 옥에 갇히기도 더 많이 하고 매도 수없이 맞고 여러 번 죽을 뻔하였으니 유대인들에게 사십에 하나 감한 매를 다섯 번 맞았으며 세 번 태장으로 맞고 한 번 돌로 맞고 세 번 파선하는데 일 주야를 깊음에서 지냈으며 여러 번 여행에 강의 위험과 강도의 위험과 동족의 위험과 바다의 위험과 거짓 형제 중의 위험을 당하고 또 수고하며 애쓰고 여러 번 자지 못하고 주리며 목마르고 여러 번 굶고 춥고 헐벗었노라."고 하였다(고후 11:23-27).


또한 바울은 말하기를, "하나님이 사도인 우리를 죽이기로 작정한 자 같이 미말에 두셨으매 우리는 세계 곧 천사와 사람에게 구경거리가 되었도다 …  바로 이 시간까지 우리가 주리고 목마르며 헐벗고 매 맞으며 정처가 없고 또 수고하며 친히 손으로 일을 하며 후욕을 당한즉 축복하고 핍박을 당한즉 참고 비방을 당한즉 권면하니 우리가 지금까지 세상의 더러운 것과 만물의 찌끼같이 되었도다."(고전 4:9, 11-13)고 하였다.

류씨는 성경에 나타나는 특별한 사례를 보편적인 것처럼 강조하므로 신자들을 혼란에 빠뜨리고 있다.

        

또한 류씨는 참된 신자는 기도를 하면 반드시 응답을 받는다고 하면서 기도 응답을 다락방전도운동의 중요한 요소로 강조한다.

그는 "교회 다니는 사람 중에 기도 응답 받지 못한 사람들 추적해 보면 예수님을 진짜 영접 안 해서 그래요."라고 하였고, 자신의 기도 응답이 3일을 넘긴 적이 없다고 하였다.

그의 이런 극단적인 표현을 논외에 부친다 하더라도, 그는 기도는 반드시 응답되어야 한다는 긍정적인 측면만을 일방적으로 강조한 나머지 신자의 삶 속에 있는 부정적인 고난의 측면을 백안시하고 있다.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 하이델베르크 교리문답서 등 개혁교회의 신조들은 성경의 가르침을 따라 신자의 불완전성을 강조한다.

신자는 아무리 높은 거룩의 경지에 이르렀다 할지라도 불완전하여 육신의 뜻을 따라 구하는 성향이 남아 있다.

신자가 하나님의 뜻대로 구하지 아니하고 자기 욕심에 이끌려 구한 기도는 응답받을 수 없다(약 4:3).

또한 비록 바르게 구했다 할지라도 그 응답이 오래 지체되는 경우도 있다.

어떤 경우에는 우리가 구한 그대로 응답받지 못하는 것이 참된 기도응답일 수도 있다.

예를 들어 사도 바울은 선한 목적을 가지고 하나님께 세 번 간절히 기도 드렸으나, 그 기도가 구한 대로 이루어지지 않았다.

그렇지만 이 경우 그의 기도는 응답받은 기도였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이다(고후 12:7-9).




2) 십자가가 결여된 영광의 신학


        

류씨는 다락방전도운동이 개인과 사회가 안고 있는 모든 문제의 해결책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전도만 하면 모든 문제가 해결되는가?

물론 죄의 근본문제는 해결된다.

그러나 죄의 구습을 처리하는 문제나 죄의 세력에서 완전히 자유하는 문제는 아직 남아 있으며, 성격적 결함이나 질병, 또는 가정의 문제는 그대로 계속되기도 한다.

또 그런 문제들이 점진적이고 부분적으로만 해결되는 경우도 많다.


류씨는 또한 전도가 사회가 안고 있는 모든 문제의 해결책이라고 반복해서 말하지만, 그것은 너무나 단순하고 무리한 주장이다.

주님께서 가라지와 알곡을 추수 때까지 같이 자라게 그대로 두라고 하신 말씀과 같이, 전도를 통해 이 사회가 안고 있는 문제들이 부분적으로 해결될 수는 있으나 그 모든 것들이 근본적으로 완전히 해결될 수는 없다.

이상적 사회나 완전한 하나님 나라의 건설은 우리의 소망이요 기도 제목이기는 하나, 현세에서 실현가능한 것은 아니다.


신자는 이 땅 위에서 개인적으로나 사회적으로 해결되지 않는 많은 문제들을 안고 신음하고 고통하면서, 종말의 완전한 해결과 구원을 소망하며 인내로써 살아 간다.

성령의 능력과 풍성한 은혜는 신자를 이 종말론적인 고난과 약함에서 완전히 벗어나게 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고난을 잘 감당할 수 있게 하며 십자가의 길을 기쁨과 감사함으로 따라갈 수 있도록 도우시는 것이다.


그래서 신자의 삶에는 구원의 기쁨과 감격도 있지만 동시에 신음과 슬픔과 고난도 공존하는 것이다(롬 8:18-25).

정통 교회는 신자의 삶의 이러한 측면을 직시하고 믿음으로 대처하게 하는 '십자가의 복음'을 전해 왔다.

그리고 이 십자가의 복음을 무시한 '번영신학' 또는 '영광의 신학'을 비성경적이며 때로는 이단적 가르침으로 정죄해 왔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류씨의 가르침에는 이런 위험성이 다분히 내포되어 있다.

그의 가르침에는 십자가의 신학의 자취를 좀처럼 찾아보기 힘들다.

하나님의 축복과 약속에는 현재 '실현된 측면'과 '아직 완성되지 않은 측면'이 있는데, 류씨는 이를 균형있게 강조치 못하고 실현된 부분에 치우침으로 신자의 삶이 지닌 종말론적인 요소를 제대로 부각시키지 못한 문제점을 안고 있다.


        

류씨의 이런 치우친 주장은 광야의 여정에서 지루함을 느끼는 신자들에게는 시원한 안식처처럼 느껴질 수 있으며, 기존 복음이 제공하지 못하는 문제 해결의 열쇠를 제시하는 참된 복음인 것 같은 착각을 일으킴으로 많은 사람들의 귀를 솔깃하게 만들 수 있다.

이것은 한 때 한국 교계에서 하나님의 축복만을 강조하는 번영신학이 많은 사람들을 끌어 당긴 것과 비슷한 현상이라고 볼 수 있다.

우리는 류씨의 이런 균형을 잃은 복음이 또 다른 형태의 번영신학이 될 수 있는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본다.

따라서 류씨의 전도운동은 참된 복음을 전하는 것이 아니라 반쪽 진리만을 전하는 것이요, 성경이 허용하는 것보다 훨씬 과장된 약속과 희망을 제시함으로써 순진한 영혼들을 교묘히 속이는, 진실하지 못한 전도 메시지이다.




 3) '귀신론'과 '사탄 배상설'의 문제



류씨는 귀신론과 사탄 배상설(賠償說)과 관련하여서도 교계에 많은 물의를 일으켰다.

그는 이 문제에 대해 나름대로의 해명을 하기도 했다.

곧, 자신은 이런 문제에 대하여 아는 바도 없다거나, 정통 교회와 신학에 속한 자신이 그런 말을 했을 리 없다거나, 또는 잘못이 있으면 이를 시정하겠다고 약속하기도 했다.

예를 들어 그는 "더 이상 사탄에게 굴복할 이유가 없다. 주님께서 십자가에서 다 지불하셨다."는 발언으로 야기된 사탄 배상설에 대해서는 단 한번 언급하였다고 변명하고 있다.


그러나 그의 이런 변명은 그의 신실성을 의심하게 만든다.

사탄 배상설에 관하여는 수영로교회 집회시에 설교하던 중 단 한번 언급하였다고 하지만, 그는 이와 유사한 언급을 '평신도 기초 전도이론 강의 테이프 6'에서도 말하고 있다.


"마가복음 10장 45절, 대속물로 오셨던 … 대속물이라는 말은 뭔가 갚아 주는 것 아닙니까? 사단에게 모든 우리의 실패(죄)의 댓가를 전부 다 갚아 버리는 것입니다. 그래놓고 주님이 문을 열어 주셨습니다. 뭔 말인가 아시겠지요? 어마어마한 권세를 주셨습니다."


다락방측은 신학자가 아닌 한 설교자로서 한 말에 대하여 너무 가혹한 평가를 한다고 반박하지만, 이런 여러 정황을 보건대 류씨의 신실성은 의심스럽다고 하지 않을 수 없다.


 뿐만 아니라 그는 문제가 될 만한 발언을 여러 차례 하였다.


"그 사람 죽어버리면 영혼이 갇혀 있다가 악령은 가만히 그 영혼이 후손을 괴롭히잖아요."


류씨는 또한 마귀(귀신)가 가져다 주는 병의 특징으로 '병명 불분명, 이유 없는 두통, 머리에서 소리가 남, 치유되지 않으면서 순간적 변동'등을 언급한다.

또 미혹의 영은 평생 따라다닌다거나 계속 증가되며 결국 육체를 멸한다고 주장한다.

비록 류씨 자신은 김기동과의 어떠한 관련도 부인하고 있지만 위와 같은 그의 발언은 김기동의 귀신론과 매우 유사한 내용을 담고 있다고 하지 않을 수 없다.




4. 교회윤리적 문제


        


류씨의 다락방전도운동은 기존의 교회를 비방, 매도하고 분열시킴으로써 그리스도의 몸된 교회에 심각한 폐해를 야기시키고 있다.

그 운동의 성격을 관찰해 보면 이미 그 속에 교회의 연합을 깨뜨릴 수밖에 없는 필연적 이유들이 내재되어 있음을 발견할 수 있다.




1) 잘못된 영적 우월주의


        

류씨의 가르침은 구조적으로 교회 분열을 야기할 수밖에 없는 요소를 가지고 있다.

그는 신자를 예수를 '믿는 사람'과 '영접한 사람'으로 양분한다.

예수를 영접한 사람만이 성령이 내주하고 마귀의 권세에서 해방되었다고 한다.

그런 가르침에 회유된 사람들은 수십 년간 예수를 믿었으나 영접하지는 못했다는 착각에 빠져 교회를 불신하고 다락방에 더욱 심취하게 된다.

또한 류씨는 기성 교회의 98%는 시험에 들어 있고 마귀에 사로잡혀 있다고 함으로써 교회에 대한 부당한 반감과 비판의식을 조장한다.

그렇게 훈련받은 사람들이 어떻게 기성 교회 안에서 하나되어 신앙 생활을 할 수 있겠는가?

류씨는 부인할지 몰라도 그의 주장 자체가 교회의 연합을 파괴할 수밖에 없는 필연적 요소들을 배태하고 있다.

결국 다락방전도운동은 자신들만이 참된 전도운동을 하고 있다는 영적 우월주의 내지는 영적 엘리트 의식으로 나타난다.

        

이런 잘못된 우월주의는 그들의 폐쇄적인 교육이나 그것에 준하는 삶의 태도로 인해 더욱 고착된다.

류씨가 운영하는 핵심요원훈련, 팀사역훈련, 미션홈, 전도신학원, 선교사훈련원, 70인요원훈련 등과 같은 많은 훈련 프로그램이 그것이다.

단순히 전도 훈련만을 위한다면 무슨 프로그램이 그렇게 많이 필요한가?

그것은 교회 일반적 전통의 토대 위에다 자신들만의 상층구조를 세우고자 하는 잘못된 엘리트주의가 게재되어 있다.

그들이 현장을 강조하고 '미션 홈'(Mission Home)을 주창하는 것은 단순히 방법론적인 문제만은 아니다.

그들이 의도하지 않았다고 하겠지만, 이것은 교회사에 나타나는 '비밀회집소'(Conventicle)의 전철을 밟는 것이다.




2) 맹신적 추종자를 양산함



류씨의 많은 프로그램 중 특히 주일 밤마다 가지는 핵심요원훈련에 대해서는 의구심을 가지지 않을 수가 없다.

목회자들을 저 멀리 경기, 충청, 강원도에서 영도 한 모퉁이까지 달려오게 만드는 것은 이해할 수 없는 행위이다.

하루 종일 예배를 인도하여 피곤한 목회자들이 어떻게 달려올 수 있으며, 그렇게 해서 무슨 목회가 제대로 되겠는가?

류씨가 정말 사심이 없다면 달려오는 목사들을 오히려 막아야 한다고 본다.

자신의 전도 방법론을 다 가르쳤으면 그것으로 본 교회 목회를 잘 하도록 격려하고 돌려보내야 할 것이다.

실제로 전에 류씨에게 배우기는 했으나 그의 집단에는 가담하지 않은 분들의 얘기가 그것이다.

방법론만 배웠으면 됐지 계속해서 그를 따라다녀야 할 이유가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류씨는 핵심요원훈련 등과 같은 프로그램을 통해 사람들을 영적으로 예속시키고 있다.

그 훈련에 참석하는 사람들은 거기에 가야만 은혜가 되고 힘이 생기고 다른 메시지는 생명이 없다고 한다.


그러는 가운데 그들은 점점 다락방을 떠나면 아무 것도 하지 못하는 영적 노예로 전락하고 만다.

류씨는 자신의 운동이 교회를 성장시키는 것이라고 해놓고 실제로는 다락방에 예속된 영적 어린아이만을 양산하고 있다.

강하게 되는 것은 교회가 아니라 다락방전도운동일 따름이다.


이렇게 다락방전도운동에 참여하는 사람들 상당수가 류씨의 맹신적인 추종자로 전락하고 있다.

교회 내에서 이런 특정인의 추종자들이 생겨난다는 것은 교회의 연합에 치명적인 해악을 끼친다.

또한 다락방전도운동에 참여하는 사람들은 자기들끼리 정서적으로 굉장한 동지의식을 가지고 있다.

기성 교회들이 다락방전도운동을 비판함으로 그들의 동지의식은 더욱 고조되고 있다.

소위 진리를 위해 핍박받는다는 식이다.

따라서 그들은 어떤 계기에 부딪치면 일시에 결집하고, 편당을 지어 교회에 어려움을 야기시키도 한다.

그래서 문제가 발생한 교회들은 갈등과 분쟁, 그리고 마침내 교회 분열이라는 아픈 상처를 입게 되었으니, 이에 대한 책임은 어떤 변명으로도 해소되기 어려울 것이다.


다락방전도운동이 이렇게 교회를 분열시키는 운동으로 귀결된다면 이는 결코 성령의 사역은 아니다.

성령은 우리의 연약함에도 불구하고 인내하신다.

거룩하신 성령은 우리의 죄와 허물을 참으시며 우리 안에서 성화를 이루어 가신다.

성도간의 상호권면도 성화의 한 방편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사랑과 성령의 인내를 힘입어서 교회의 부족한 모습을 개혁해 나가는 데 적극적으로 헌신하기보다는, 전도의 열심을 빙자하여 교회를 정죄하고 분열시키는 행위는 결코 성령의 사역으로 볼 수 없다.


전술한 대로 다락방전도운동은 그 가르침이나 조직의 극단성 때문에 사실은 자신들이 표방하는 전도운동에도 별다른 성과를 나타내지 못하고 있는 경우가 많다.

초기에 다락방전도운동에 열심히 가담했던 우리 교단의 어떤 목사에 의하면 자신의 교회에서 다락방훈련을 받은 12명의 성도들을 인도자로 세워 보았지만 아무런 성장이 없었다고 한다.

전도란 말과 행실에 모범이 되는 성숙한 그리스도인을 통할 때 효과가 있는 것이지, 교회 안에서의 영향력 증대나 꾀하는 왜곡된 인격으로는 아무리 훈련을 받는다고 해도 별무성과일 것은 자명하다.


이런 결과는 목회자에게도 마찬가지로 나타나고 있다.

한계에 도달한 목회의 돌파구로 다락방을 찾는 목사들은 아무리 다락방에서 배운 것을 사용해도 별로 결실이 없음이 나타나고 있다.

전도란 참으로 영혼을 구원코자 하는 열정에서 이루어져야지, 단지 교회의 수적 성장만을 목표로 한다면 그것은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것이 아닐 것이다.

물론 누구에게나 목회 사역에 별다른 열매가 나타나지 않을 때가 있을 수 있다.

그럴 때는 그 원인을 찾아 해소해야지, 그렇지 않고 다락방전도운동을 마치 하늘에서 떨어진 비법인 것 같이 사용해 보아야 별 성과가 없을 것은 당연하다.


대구의 K 목사와 같이 간혹 다락방에 참여한 후로 교회가 성장한 사례도 있다.

그러나 우리가 분석한 바로는 그런 목회자는 다락방이 아니더라도 교회를 일으킬 수 있는 목회적 자질과 능력을 갖춘 분들이다.

그런 경우 다락방이 방법론적으로 조금의 도움이 되었을 수는 있다.

그러나 그것 하나만으로 다락방전도운동이 안고 있는 수많은 문제점들을 상쇄할 수는 없다.






결론


        


류씨의 가르침에는 표현상의 오류와 극단성으로 야기되는 문제를 제외하고도, 위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많은 면에서 비성경적이고 불건전한 요소를 내포하고 있다.

그러므로 교회 안에 위화감과 대립, 분쟁과 분열을 조장할 수 있는 위험성을 심각하게 배태하고 있다.

전도에 대한 그의 이해는 다분히 편향적이다.

그는 오로지 전도라는 하나의 각도에서만 성경을 해석하기 때문에, 치우친 '축소복음주의' 또는 '전도획일주의'로 빠지고 말았다.

결과적으로 복음이 성도들에게 주는 더 많은 은혜와 유익들을 바로 부각시키지 못하고 있다.

그러나 예수님과 사도들이 제시하고 종교개혁자들이 강조한 복음운동은 단지 '일차적 전도'로만 끝나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께서 명하신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는 '총체적인 복음운동'이다.

이에는 일차적인 전도뿐만 아니라, 그리스도인의 윤리와 성화, 이 세상에서의 '빛과 소금'으로서의 삶이 포함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류씨는 그의 다락방운도이 마치 전통 교회가 계속해 온 총체적인 복음운동을 대체하는 운동인 양 주장함으로써 큰 혼란과 문제를 야기하고 있다.

이런 태도는 지난 100년 이상 한국 교회를 인도하신 삼위 하나님의 역사를 간과하는 처사이다.

또한 그의 '천사 동원권'이나 '사탄 결박권', 그리고 '귀신론' 등은 상당히 치우치고 편중된 가르침으로서, 매우 위험한 요소를 내포하고 있다.

이런 문제로 인해 류씨의 다락방운동은 가는 곳마다 성령의 열매인 화평을 이루기보다는 오히려 반목과 질시를 초래하며, 교회에 덕을 세우기보다는 혼란과 분열을 야기하고 있다.



이 모든 것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볼 때 류씨의 다락방전도운동은 이단적 성격을 띤 불건전한 운동이라고 볼 수밖에 없다.

그러므로 본 교단에 소속된 목사와 교인들이 류씨의 다락방전도운동에 참여하는 것을 일절 금하고, 성경이 제시하고 기존 교회가 전통적으로 강조해 온 총체적인 복음전파운동에 더 한층 매진하도록 해야 할 것이며, 이를 위해 성경적 복음전파에 대한 바른 교육을 교단 차원에서 강화함이 필요하다고 사료된다.


by 活死人 | 2010/10/13 00:20 | 다락방(류광수) | 트랙백 | 덧글(0)

류광수의 다락방의 이단성 (1)

 

제목: 류광수씨의 다락방전도운동에 대한 연구보고서


(본 자료는 고려신학대학원 교수회에서 제목에 관한 연구보고서로서 총회의 자료요청에 관하여 교수회에서 올린 자료의 원안입니다)


대한예수교 장로회(고신) 총회장 귀하

일시: 1998년 3월 30일

제출자: 고려신학대학원 교수회


 

서론


류광수씨(이하 류씨라 칭함)는 1951년 경남 밀양에서 태어나 부산에서 성장하였다.

그는 고신대 신학과와 총신대 신학대학원을 졸업하여 합동측 교단에서 목사 안수를 받았다.

1987년에 부산 영도의 동삼제일교회에 부임하여 오늘날까지 그 교회를 시무하고 있다.

그가 세간에 널리 알려지게 된 것은 '다락방전도훈련원'을 설립하여 전도를 강조하면서 전국에 '지회'를 설립하고, 여러 집회와 프로그램을 통해 자기 자신의 '전도방법'을 소개하고 홍보하면서부터이다.


처음에는 건전한 기성 교회의 목사들과 성도들 중에도 많은 사람들이 관심을 가지고 그가 주장하는 효과적인 전도방법을 배우거나 응용하여 도입하려고 하였다.

전도에 대한 강조와 새로운 전도방법에 대한 소개는 자연히 많은 사람들의 관심을 끌게 되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서 차차 류씨가 주장하는 가르침과 실제 행하는 방법에 적지 않은 문제가 드러나면서 교회에 혼란과 분쟁이 생기고, 심지어는 분열의 아픔까지 맛보게 되었다.

그리하여 본 교단에서는 1995년 광주은광교회에서 개최된 제 45회 총회에서 '류광수 씨와 다락방 전도학교'에 대한 '유사종교연구위원회'의 보고와 제언을 받고 "지금까지 관련된 교단 내의 인사에 대하여는 불문에 부치되 다락방과 계속 관련하는 인사에 대하여는 적절한 권징을 하도록 가결"하였다.

1996년 9월의 합동측 총회는 류씨의 다락방 운동을 이단집단으로 규정하였으며, 이어서 개혁측, 통합측, 성결교, 감리교, 침례교 교단 등에서도 류씨의 다락방전도운동의 문제점을 지적하고 경계하거나 교단차원에서의 대책을 세우게 되었다.


본 교단에서는 지난 97년 제 47회 총회에서 이 문제를 다시 논의한 결과 류씨 의 다락방 운동에 대해 고려신학대학원 교수회에 맡겨 연구 보고토록 하였다.

이에 본 교수회는 그 동안의 연구 결과를 토대로 이 연구보고서를 제출하게 되었다.

류씨와 그의 다락방전도운동에 대해서 현재까지 여러 공식적, 비공식적인 비판들이 나왔고, 이에 대해 류씨와 그의 다락방전도운동측은 반박성명서와 해명서를 발표하였다.

그래서 본 연구서는 여태까지 진행된 비평과 반박을 독자들이 쉽게 파악할 수 있도록 양측의 주장을 비교하여 <부록>에 소개하였다.

우리는 이 보고서를 작성하면서 기존의 비평에만 의존할 경우 자칫 잘못하면 부정적인 선입관과 편견에 치우치기 쉬우며, 다수의 견해와 전통이라는 이름으로 공신력을 얻으려는 유혹에 빠질 수 있다는 점을 염두에 두었다.

아무리 이단성이 있는 견해라 할지라도 그것에 대한 판단은 최대한 객관적이고 공정하게 이루어져야 한다는 것이 우리의 기본 자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류씨의 가르침에는 비판의 소지가 될 수 있는 표현상의 오류와 조화와 균형을 상실한 극단적 성경 해석과 표현들이 많이 나타나고 있음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류씨를 옹호하는 이들은 설교자의 말이나 실수를 가지고 이단으로 비판하는 것은 이적 행위와 같은 것이며, "대한민국 어느 목사이든지 사람을 잡으려고 이렇게 단어 문맥 하나하나 따지면 이단 안 될 목사가 누가 있겠는가?"라고 반문한다.

류씨는 또한 자신이 정통 교회에서 성장하였고 정통 신학의 노선을 배우고 가르친다고 역설한다.

그리고 자신의 표현상의 오류로 비판을 받을 만한 소지가 있을 수 있었다는 것을 인정하면서, 잘못된 부분을 지적해 주면 얼마든지 고쳐서 전도만 열심히 하겠다고 자신의 소신을 밝히기도 하였다.


그러나 우리가 비판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은 류씨의 다락방 전도운동에는 분명히 심각한 문제가 있다는 것을 확신하기 때문이며, 류씨의 입장 표명에는 진실성이 결여되었다고 보기 때문이다.

류씨는 자신의 가르침에 대한 문제가 공적으로 제기될 때마다 자신의 잘못을 시정하겠다고 말은 하지만 구체적으로 어떤 내용을 어떻게 시정하겠다고 밝힌 적이 없다.

그는 구체적으로 비판받고 지적받은 부분에 대해 솔직하고 확실한 시인을 하기보다는 "그런 표현을 한 적이 없으며 혹 그런 부분이 저도 모르게 있었다고 하면 고치겠다."는 모호한 태도를 취하곤 한다.

그러기에 우리는 류씨가 진정한 개혁이나 수정의지는 없이 불리한 상황을 모면하려는 궁여지책(窮餘之策)으로 표면적으로는 수정의사를 표명하지만 실제적으로는 문제가 되는 자신의 주장들을 계속 확산시켜 나가고 있다고 본다.


나아가서 우리는 이단인지 아닌지 분별하기 힘든 불건전한 운동이 오히려 교회에 더 치명적인 피해를 끼친다는 사실을 중시한다.

류씨는 정통신학을 배운 사람으로서 정통신학으로 분명하게 정죄될 수 있는 이단의 입장을 공공연히 표방할 만큼 어리석지는 않을 것이다.

그는 정통 신학을 알기에 정통 신학이 이단을 규정하는 교리적인 망을 교묘하게 피해 가며, 아주 지능적이고 교묘하게 사이비적인 가르침을 퍼뜨릴 수 있다는 점에서 그와 다락방전도운동은 큰 위험성을 지니고 있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여태까지 진행된 기존의 비판들을 참고하면서, 우리는 문제를 새로이 파악하고 비판하려고 한다.




1. 다락방전도운동의 정통성 주장의 문제점


류씨는 다락방전도운동의 정통성을 강조하기 위해 "사도행전에 나타나는 초대교회의 복음전파운동이 바로 다락방의 시작이며, 루터와 칼빈의 말씀운동이 또한 다락방운동"이라 하였다.

류씨의 이런 주장은 그의 다락방전도운동의 합법성을 탄탄한 기초 위에 세우고자 하는 의도에서 비롯된다.

그렇지만 바로 이 점에서부터 심각한 혼란을 야기하는 문제가 발단한다.

왜냐하면 초대교회의 복음전파운동과 칼빈, 루터의 개혁운동은 전통적인 개신교가 주장하는 정통성의 성경적 근거요 역사적 배경이기 때문이다.

이렇게 류씨가 정통 교회와 똑같은 성경적 근거와 역사적 맥락에서 자신의 다락방전도운동의 정통성을 주장하면서, 전도를 소홀히 하는 기존 교회와 참된 복음전도에 힘쓰는 다락방전도운동이라는 두 세력을 대립시킨다.

여기에 이미 분열의 요인이 도사리고 있다.


정통 교회와 똑같은 근거 위에서 다락방전도운동의 정통성을 찾으려는 류씨의 오만한 구상은 그 운동이 전개되면서 점점 심각한 양상으로 표면화되었다.

그는 다락방전도운동을 전개하면서 기성 교회를 전도를 잘 안 하는 교회요 참된 복음전파의 사명을 저버린 교회로 평가절하하며, 다락방전도운동이야말로 참된 복음운동이라고 주장함으로써 양자간에 대립과 갈등을 조장하였다.

이처럼 다락방전도운동이 정통 교회의 대안으로 제시되면서 양자가 서로 대립하며 충돌하는 현상들이 여러 방면으로 나타나고 있다.


류씨는 기존 교회와 대립되는 교회나 교단을 결코 만들지 않을 것이라 단언하였다.

그러나 그의 다락방전도운동이 진행되면서 점점 보이지 않는 또 하나의 교단, 기성 교회와 구별되는 소위 '참된 복음전도운동'을 한다고 하는 또 하나의 교회를 형성해 가더니, 결국 1997년 9월 10일에 '대한 예수교 장로회 전도총회'라는 교단을 만들고 말았다.

그는 기성 교회의 조직이나 프로그램을 거부하면서 자기 나름의 새로운 조직과 프로그램을 만들었다.

전도핵심요원을 만들어내는 조직, 새신자를 훈련하는 프로그램, 전도학교, 전도신학교를 비롯하여 다락방전도복음을 전하는 선교사를 파송하는 조직에 이르기까지 기성 교단이 가지고 있는 조직과 버금가는 대조직을 정비하였다.

이 모든 것은 교회를 돕는 측면 운동을 하겠다던 자신의 거듭된 공언과는 다른 것이다.

그 결과, 그의 다락방전도운동은 기존 교회와 대립되는 새로운 교회, 전도에 초점을 맞춘 새로운 형태의 조직과 프로그램을 갖춘 또 하나의 교회를 형성함으로써 한국 교회 전체에 큰 혼란과 문제를 초래하고 말았다.

이런 문제의 불씨가 이미 그의 다락방전도운동의 정통성에 대한 잘못된 주장 안에 도사리고 있었던 것이다.




2. 류씨의 '전도운동'의 문제점



 류씨는 젊어서부터 오직 '오직 전도 하나를 위해 다른 모든 것을 포기'하고 "생일, 결혼, 회갑, 여행 등, 심지어 초상집에도 가지 않고 영혼 구원을 위한 전도에만 혼신의 힘을 다해 살아 왔고 또 살고 있다."고 한다.

그래서 그는 부산 영도에 '다락방전도훈련원'을 설립하고 전국 곳곳에 '지회'를 설립하여 운영하고 있으며 나아가서 소위 세계복음화를 위해 동분서주하고 있다.


 물론 이처럼 전도를 위해 헌신하고 전도를 위해 총력을 기울이는 것은 좋은 일이다.

주님께서 우리에게 명령하신 것이 바로 "온 천하에 다니며 만민에게 복음을 전파하라."고 하신 것이 아닌가?(막 16:15)

부활하신 후에 갈릴리에 오셔서 제자들에게 주신 말씀도 역시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으라."는 것이었다(마 28:19).

따라서 류씨가 '전도'를 강조하고 이를 위해 애쓰는 것 자체는 잘못이 아니다.

그러나 그의 전도 운동은 다음과 같은 문제점들을 내포하고 있다.




1) 류씨는 예수께서 전하신 복음을 잘못 이해하고 있다.



류씨가 전하는 복음의 내용은 너무 협소하다.

그는 종종 "예수는 그리스도이다." 또는 "예수는 하나님의 아들이다."라는 것만 알면 다 된다고 말한다.

그리고 그는 "전도는 쉬운 것이다."라고 하며 "전도는 되어지는 것이다."라고 말한다.

그는 또 이렇게 말하기도 한다.

"저는 설교 준비를 안 합니다. 할 것도 없고 또 해지지도 않고 항상 누구 얘기만 하느냐? 예수님 얘기, 전도만 얘기합니다. 전도 외에 다른 것 할 필요가 없습니다."


 물론 "예수는 그리스도이시다." 또는 "예수는 하나님의 아들이시다."라는 것이 복음의 핵심이고 요체임에는 틀림없다.

그래서 사도들도 그렇게 전하였고, 우리도 또한 그렇게 전한다.

그러나 성경은 우리가 전해야 하는 복음의 내용을 항상 그런 것으로만 제한하고 있지는 않다.

예수님께서는 부활하신 후 제자들에게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마 28:18-19)고 말씀하셨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명령하신 분부는 그저 예수님을 영접하고 끝나는 것이 아니라, 또한 예수님께서 명령하신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는 것이다.

여기에는 우리가 어떻게 구원받고 천국에 들어가는가에 관한 것뿐만 아니라, 우리가 이 세상에서 어떻게 '빛과 소금'으로서 살아야 할 것인가에 대한 가르침이 다 포함되는 것이다.

한 마디로 예수님께서 가르치신 모든 것, 곧 복음서에 있는 모든 말씀이 다 우리가 전해 주고 가르쳐야 할 말씀인 것이다.


 그러나 류씨는 '전도의 내용'을 너무나 협의로 이해해서 불신자에게 처음 예수를 영접하게 하는 것이 전도의 거의 전부인 양 가르친다.

뿐만 아니라 기성 교회는 전도를 하지 않는다고 비방하면서 자기들만 전도하는 참 교회인 양 주장한다.

물론 류씨 자신도 전도를 좁은 의미로만 보면 안 되고 넓은 의미에서 보아야 한다고 말하기는 한다.

그러나 그가 말하는 넓은 의미의 전도란 '복음을 전파할 뿐 아니라 새신자를 양육하여 일꾼으로 성장시키고 다시 그들을 삶의 현장으로 보내어 그 곳에서 열매를 맺게 하는 것'을 뜻한다.

그래서 그의 '일꾼 양육'을 위한 교재의 내용을 보면, 실제로는 예수님을 처음 영접하게 하는 '일차적인 전도'를 위한 훈련 및 사단 결박, 기도의 능력, 병 치료 등에 거의 치우치고 있음을 보게 된다.

그러다 보니 류씨가 전하는 복음은 매우 치우치고 편협한 것이 되고 말았으며, 그리스도인의 성화와 생활에 대한 강조가 매우 약화되고 말았다.


그리하여 류씨는 성경에 나타난 포괄적이고 광의적인 복음을 축소하고 왜곡하여, 지극히 협소하고 치우친 '축소복음주의' 또는 '전도획일주의'로 빠지고 말았다.

그 결과 성도의 올바른 윤리와 이 세상에서의 건전한 삶이 등한시되고, 사회와 국가에 대한 그리스도인의 의무를 소홀히 함으로써 실제로는 그들이 주장하던 전도도 별로 이루어지지 않고, 많은 경우 그 동안 기성 교회에 불만을 느끼고 잘 적응하지 못하던 일부 교역자와 성도들을 빼앗아 가는 결과를 가져오고 말았다.

여기에 류씨 운동의 근본적인 문제점이 있다고 말할 수 있다.




2) 류씨는 사도들이 전한 복음을 잘못 이해하고 있다.



류씨는 다락방전도운동의 성경적 근거를 사도행전 1장 13-14절에서 찾고 있다.

그는 이렇게 말한다.

"다락방 전도는 예수님께서 친히 제자들을 중심으로 마가 요한의 다락방(the Mark's Room)에서 시작하신 순수 복음 운동이었고 기도모임이었습니다(행 1:13-14). 이것은 예수님의 공생애 기간 중에서 가장 많은 시간과 정성을 투여한 운동이었으며, 유대교의 율법과 바리새인들의 사상과 회당을 중심으로 한 모든 교육을 뛰어넘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그가 근거로 제시하는 사도행전 1장 13-14절은 류씨가 주장하듯이 '다락방 전도'를 위한 구절이 아니라, 그도 부분적으로 인정하듯이 예수님께서 승천하시기 전에 분부하신 바 성령강림을 기다리며 기도하는 '기도회' 모임이었다.

뿐만 아니라 그 때 120명쯤 되는 성도들이 모여 기도했었다는 것은 역사적 사실로서 오늘날 우리가 꼭 그대로 모방해야만 하는 것은 아니다.

이들의 '기도회 모임'은 예수님의 승천 후에 오순절 성령 강림을 기다리는 역사적 특수 상황 가운데 있었으며, 그들만의 독특성이 있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류씨는 사도행전에 기록된 초대 교회의 복음전파운동이 곧 참된 복음전도운동이요, 그것이 곧 다락방전도운동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사도행전에서 사도들이 전한 복음은 류씨가 주장하는 복음과는 차이가 있다.

사도들이 전한 복음은 류씨가 주장하는 것과 같은 좁은 의미의 복음이 아니라 성도의 모든 삶을 포괄하는 총체적인 복음이기 때문이다.

물론 사도들도 '예수는 그리스도이심'과 '하나님의 아들 되심'을 전했지만(행 9:20,22, 17:18, 고전 1:23, 2:2 등), 그 전파된 '그리스도'와 '하나님의 아들'은 류씨가 주장하는 것처럼 치우치고 축소된 내용을 가지고  있는 그런 '그리스도'나 '하나님의 아들'이 아니라, 우리를 죄에서 구원하시며 우리의 모든 삶과 생사화복을 주장하시고, 우리에게 날마다 하나님을 본받아 경건하게 살 것을 요구하시는 '그리스도'요 '하나님의 아들'이시기 때문이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예루살렘 공회와 벨릭스 총독 앞에서 '하나님께 대한 소망 곧 의인과 악인의 부활'을 인하여 심문을 받는다고 하였으며(행 23:6, 24:15), 또 벨릭스와 그의 아내 드루실라에게 그리스도 예수 믿는 도를 전할 때에는 '의와 절제와 장차 오는 심판'을 강론했다(행 24:25).

이처럼 사도들이 전한 복음은 포괄적이요 전체적인 복음이었다.


물론 사도들이 믿지 않는 자들에게 처음 복음을 전할 때는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을 증거하고, 이 그리스도를 영접하도록 촉구하였다(행 2:38, 4:12, 16:31 등).

하나님께서는 "전도의 미련한 것으로 믿는 자들을 구원하시기를 기뻐하셨다."(고전 1:21)

따라서 사도 바울은 '유대인의 표적'이나 '헬라인의 지혜'를 전하지 않고 '십자가에 못 박힌 그리스도'를 전했으며(고전 1:23), "예수 그리스도와 그의 십자가에 못 박힌 것 외에는 아무 것도 알지 않기로 작정하였다."고 말한다(고전 2:2).

이처럼 우리가 믿지 않는 자들에게 처음 복음을 전할 때에는 '일차적인 전도'에 치중할 수밖에 없고, 또 그렇게 해야만 한다. 


그러나 사도들은 류씨가 하듯이 소위 '중요한 핵심부분을 반복교육'하는 것에 그치지 아니하고, 더 나아가 '복음에 합당한 생활'을 가르쳤다.

오순절 날에 회심한 3천명의 무리들에게 사도들은 날마다 그들을 '가르쳤으며', 거기에는 또한 '교제'와 '기도'와 물건을 서로 통용하는 '사랑'이 있었다(행 2:42-47).

사도 바울은 에베소에서 2년 반 동안 머물면서 복음을 전하고 목회하였는데, 그 교회를 떠나면서 장로들에게 자신의 사역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곧 모든 겸손과 눈물이며 유대인의 간계를 인하여 당한 시험을 참고 주를 섬긴 것과 유익한 것은 무엇이든지 공중 앞에서나 각 집에서나 거리낌이 없이 너희에게 전하여 가르쳤다."(행 20:20)

골로새 교회에 보낸 편지에서도 바울은 이렇게 말하고 있다.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너희의 믿음과 모든 성도에 대한 사랑을 들음이요 너희를 위하여 하늘에 쌓아 둔 소망을 인함이니, 곧 전에 복음 진리의 말씀을 들은 것이라."(골 1:4-5)

여기서 우리는 바울이 전한 '복음 진리의 말씀'은 곧 '믿음'과 '사랑'과 '소망'임을 알 수 있다.

  

이처럼 바울은 일차적인 전도만 하고 끝난 것이 아니라, 그에 필연적으로 따르는 그리스도인의 윤리와 인격, 성화와 생활, 나아가서 유익한 모든 것을 가르쳤다.

이것이 바로 넓은 의미에서의 복음이며 성경이 말하는 바 총체적인 복음인 것이다.

그래서 바울은 그의 서신서에서 "그리스도 복음에 합당하게 생활하라."고 말하고 있으며(빌 1:27), 또한 "그러므로 너희가 그리스도 예수를 주로 받았으니 그 안에서 행하되 그 안에 뿌리를 박으며 세움을 입어 교훈을 받은 대로 믿음에 굳게 서서 감사함을 넘치게 하라."고 말하였다(골 2:6-7).

이처럼 바울이 전한 복음에는 '교리 부분'과 그에 따른 '윤리 부분'이 있지만, 류씨가 전하는 다락방복음에는 이 '윤리 부분'이 거의 없거나 무시되어 있다.

뿐만 아니라 그가 전하는 '교리 부분'도 아주 초보적이고 기초적인 내용에만 머무르고 있으며, 상당 부분이 사단과의 대결구도로 편향되고 왜곡되어 있다.

이런 점에서 볼 때 류씨가 주장하는 다락방전도운동은 사도들의 전도운동과는 다른 것이라고 결론 지을 수 있다.




3) 류씨는 종교개혁자들의 말씀운동을 잘못 이해하고 있다.



사도들의 복음전파와 가르침의 바탕 위에 세워진 역사적인 정통 교회들은 성경에 나타난 포괄적인 복음전파사역을 지향해 왔다.

류씨는 16세기 종교개혁운동을 다락방전도운동과 동일한 것으로 주장하나, 칼빈의 개혁운동은 류씨와 같이 전도만 강조한 운동이 아니라 중세 카톨릭 교회에 의해 변질된 복음을 다시 회복하고 말씀으로 교회를 개혁함으로 세상 속에 하나님의 주권을 확장해 가는 총체적 복음운동이었다.

곧 칼빈의 개혁운동은 성경 말씀의 권위를 바로 세워 그 말씀을 온전히 지키고 따르는 데 역점을 기울인 운동이었으며, 칭의와 성화의 교리를 재정립하며, 교회를 성경적인 모습으로 갱신하여 세상 속에서 하나님 나라를 확장시키려는 운동이었다.

따라서 칼빈의 개혁운동은 류씨의 다락방전도운동과는 그 의미나 강조점, 목적과 성격이 아주 다른 것이다.


기성 교회의 대부분의 목사들은 주님의 명령과 사도들의 가르침에 따라 그리고 개혁교회의 전통을 따라 신자들을 말씀으로 양육하며 교회를 주 안에서 바로 성장시키기 위해 직분자를 세우고 조직과 프로그램을 만들어 가며 목회에 힘쓰고 있다.

이 모든 목회사역이 궁극적으로 우리 교회와 교인들이 복음의 빛을 밝히 비추는 증인으로서의 사명을 잘 수행하기 위한 복음전파의 목적을 가지고 행해지는 것이다.

그러므로 기성 교회가 하는 모든 목회사역은 복음전파의 필수적인 요소요, 그 자체가 복음전파운동인 것이다.


그러나 류씨는 복음전파운동의 포괄적인 의미를 성경적 관점에서 바로 이해하지 못하고 그 동안 복음전파 사역에 힘쓰고 있는 기성 교회를 전도 안 하는 교회로 비난하고 있다.

그는 교회의 복음전파운동에서 중요한 요소인 성화와 양육, 나아가 이를 위해 필요한 조직과 프로그램 및 목회사역을 간과한 채, 일차적인 전도만 하는 것이 참된 복음운동이라고 주장한다.

이것은 교회에게 주어진 총체적인 복음전파사역을 바로 이해하지 못한 비성경적인 주장이다.




4) 다락방전도 방법만이 유일한 전도방법은 아니다.



류씨는 다락방전도만이 유일한 전도방법인 듯이 주장한다.

그는 이렇게 말한다.

"전도하되 다락방 전도여야 합니다. 지금까지의 전도방법은 기본 원리를 빠뜨린 채 해 왔기 때문에 전도가 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류씨가 주장하듯이 꼭 자기들 방식대로 전도해야만 올바른 전도라는 주장은 성립될 수 없다.


우리가 전도해야 한다는 것은 절대불변의 진리이지만, 그 전도하는 방법은 다양하게 나타날 수 있다.

예수님께서는 수천 명의 무리들에게 전도하셨을 뿐 아니라 열 두 명의 제자들에게 조용히 가르치기도 하셨다.

또한 회당에서나 집에서나 산이나 들에서 가르치기도 하셨고, 길 가면서도 가르치시고 식사하면서도 가르치셨다.

또 열 두 제자를 내어 보내면서 복음을 전하게 하셨을 뿐 아니라 70명을 둘씩 둘씩 보내면서 복음을 전케 하기도 하셨다.

사도들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사도들은 오순절 날 예루살렘에서 수천 명의 무리들에게 설교함으로 복음을 전하였으며, 회개하고 믿은 자들에게는 사도들이 날마다 가르쳤다.

바울은 회당에 들어가서 복음을 전하기도 하였고 길거리서나 시장에서나 어디서든지 기회 닿는 대로 복음을 전하였다.


이처럼 복음 전파의 방법은 다양하게 나타나며, 꼭 어느 한 방법만이 옳다고 말할 수는 없는 것이다.

그런데도 류씨가 다른 전도방법을 비판하고 자신의 전도방법만이 전도되는 방법인 것처럼 선전하는 것은 잘못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5) 류씨는 복음전파의 궁극적 목적을 바로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류씨는 복음전파 사역의 한 단면만을 거의 전부인 양 부각시킨 나머지 다른 중요한 면들을 백안시하는 오류를 범하고 있다.

그는 전도를 그토록 강조하면서도 전도의 궁극적 목적을 바로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류씨에 의하면 전도의 목적은 인간을 죄에서 구원하고 사탄의 억압에서 해방시키고 영육의 모든 문제를 해결받고 그리스도를 누리는 것이라 한다.

그는 전도의 목적을 인간이 누리는 혜택의 차원에서만 이해하고 전도의 궁극적 목적은 하나님의 영광에 있다는 것을 바로 강조하지 못하고 있다.

류씨는 전도의 목적을 주로 죄와 사탄과 비참으로부터 구원(liberated from)이라는 것을 강조하나, 그와 함께 하나님께 나아가 의의 열매를 맺음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기 위한 구원(liberated for)이라는 점을 바로 부각시키지 못하고 있다.


류씨는 사람을 구원하는 열매가 가시적으로 나타나는 전도만이 능력 있는 참된 전도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노아처럼 120년 동안 전도했으나 아무 열매가 없어도 복음의 빛을 바로 밝힌 전도라면 그것은 하나님께 영광되는 전도이다.

전도는 영혼을 구원하는 목적만 갖는 것이 아니고 끝내 복음을 거부하는 세상에 분명한 증인의 모습을 보여줌으로 그들로 핑계할 것이 없게 만드는 또 다른 목적도 있다.

신자들의 성결한 삶을 통해 교회를 비방하는 이들의 입을 막고 그들이 부인할 수 없는 복음의 빛을 비치는 것도 전도의 일면인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영광을 궁극적 목적으로 하는 전도는 성도들이 이 세상에서 빛과 소금된 삶을 사는 것을 통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것이다(마 5:16).

        

우리를 택하시고 구원하신 목적은 예수의 형상을 본받게 하기 위함이다(롬 8:29).

우리가 주의 형상으로 변해갈 때, 곧 성령의 열매가 나타나는 인격의 소유자로 새로워질 때 하나님께서 영광을 받으신다.

주님께서도 우리가 세상에서 이 열매를 많이 맺으면 하나님 아버지께서 영광을 받으신다고 하셨다(요 15:8).

우리를 이 땅 위에 예수의 증인으로 남겨두신 이유는 첫 사람 아담의 성품을 벗어버리고 두 번째 사람인 그리스도의 형상을 입은 새사람의 모습이 어떤 것인가, 이런 새 사람이 모인 참된 인간의 공동체의 모습과 삶이 어떠한 것인가를 보여줌으로 그리스도의 은혜의 풍성과 영광을 나타내시기 위함이다.

이것이 곧 예수의 증인되는 삶이요, 세상에 빛을 비춘다는 의미이며 궁극적으로 하나님께 영광이 돌아가게 하는 전도이다.

모든 교회와 신자들은 계속 주님을 입으로 증거해야 한다.

그러나 이런 입술의 전도는 전인적인 전도가 뒷받침되고 병행될 때 참된 복음 증거가 되는 것이다.

류씨의 가르침에는 이 전도의 궁극적인 목적이 바로 제시되지 못함으로 이 목적을 이루기 위한 성화와 회개, 변화의 필요성에 대한 강조를 거의 찾아볼 수 없다.




6) 현재 한국 교회가 필요로 하는 것은 다락방전도운동이 아니다.


        

류씨는 침체하는 한국 교회를 살리는 길이 다락방전도운동이라고 역설한다.

이러한 류씨의 말은 교회성장의 돌파구를 찾아 보려고 고심하는 목회자들에게는 상당한 유혹으로 다가오고 있다.

그러나 그것은 교회가 안고 있는 문제를 일시적으로 해소하는 방법일 수는 있어도 근본적인 해결책은 될 수 없다.

지금 이 시점에서 한국 교회에는 류씨가 강조하는 일차적 전도도 중요하지만, 그와 함께 개인 신자의 바른 양육과 성화, 교회 차원의 개혁도 또한 중요한 문제이다.

우리는 기성 교회가 이런 점에서 실패하고 있기 때문에 세상에서 신뢰와 영향력을 잃어가고 있다고 본다.

현재 한국 교회에 필요한 것은 열심있는 복음전파와 함께, 잃어버린 거룩과 신앙의 순결을 회복하는 철저한 회개운동과, 한국 교회에 만연하고 있는 세속주의와 물질주의의 요소들을 척결하는 개혁운동이다.

교회가 교회의 참 모습을 회복하고 은혜와 성령이 충만한 공동체가 될 때 가장 효과적인 복음전파가 진행될 것이다.

        

한국 교회는 여태까지 전도에 힘쓴 교회로 알려져 왔다.

개신교 역사 백년이라는 짧은 기간에 세계 교회사에서 전례를 찾아볼 수 없는 놀라운 성장을 이룬 것은 한국 교회가 그 동안 전도에 열심히 매진한 결과가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이러한 엄연한 사실을 무시하고 류씨가 기존 교회는 전도를 안 하는 교회처럼 말하는 것은 큰 잘못이다.

지금도 대다수 교회들이 전도에 심혈을 기울이고 있고 많은 교인들이 삶의 현장에서 증인의 사명을 열심히 수행하며 살고 있다.

이런 기성 교회의 복음전파운동은 다락방전도운동처럼 거창하고 떠들썩하게 진행되지는 않기에 류씨의 눈에 잘 감지되지 않았는지도 모르겠다.

류씨는 기성 교회의 전도는 '안 되는 전도'이고 다락방전도는 '되는 전도'라고 말하며 다락방전도의 성과를 크게 과시하고 있으나, 백 년 전만 해도 복음의 불모지였던 이 땅에 지금은 천만에 이르는 교인이 생긴 것은 바로 기성 교회의 복음전파운동의 열매라는 사실을 우리는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혹자는 다락방전도운동으로 인해 교인이 늘고 목회에 도움이 되었다는 사례들을 들면서 이 운동을 긍정적으로 평가하려고 하기도 한다.

그러나 이렇게 긍정적인 듯이 보이는 사례가 꼭 그 운동이 성경적이고 건전하다는 것을 입증해 주는 것은 아니다.

하나님께서는 때로는 휘어진 막대기도 사용하신다.

은혜가 무한하신 하나님께서는 잘못된 가르침 안에 잔재되어 있는 산발적인 복음적 요소를 통해서 선을 이루시기도 하신다.

그러므로 이런 열매들은 다락방운동의 오류와 불건전성에도 '불구하고' 내리시는 하나님의 은혜의 결과로 보아야 할 것이다.

        


우리는 기성 교회가 많은 문제점과 개혁해야 할 것들을 안고 있으며, 이에 대한 건설적인 비판이 필요하다는 것을 부인하지 않는다.

그러나 이런 비판은 주님의 몸된 교회의 문제가 곧 나의 문제요, 그것을 들추어 내는 것이 곧 나의 치부를 들추어 내는 것처럼 고통스럽고 안타까운 마음으로, 교회에 대한 깊은 사랑과 눈물의 기도를 배경으로 한 건설적인 비판이어야 할 것이다.

이러한 교회에 대한 사랑과 눈물의 기도가 결핍된 채 교회의 약점을 비판하는 데 열을 올리는 것 같은 자세는 과거에 있어 온 이단의 전형적 특색이라 할 수 있다.

우리는 류씨가 그와 같은 잘못에 빠지지 않기를 바라지만, 그러나 교회의 문제점을 지나치게 부정적으로 비판하고 자신의 다락방전도운동만이 이런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참된 복음운동이라는 것을 부각시키는 그의 오만한 태도 속에는 이러한 경향이 나타나고 있다는 것을 부인하기 어렵다.

성령의 사역자는 화평케 하는 자이며, 성령의 운동은 항상 화평의 열매를 맺는다.

그래서 "화평케 하는 자들은 화평으로 심어 의의 열매를 거두느니라."고 하셨다(약 3:18).

그러나 류씨의 다락방전도운동에는 이 성령 운동의 가장 중요한 특색이 결여되었고, 오히려 교회의 하나됨을 파괴하여 성령을 근심하게 하는 결과를 초래하고 있다.


전도의 중요성을 부르짖는 류씨의 메시지는 아주 복음적인 것 같으나 아주 교묘하게 비성경적이다.

복음을 열심히 전해 죽어 가는 영혼들을 구하고 온갖 우상과 죄악과 어두움의 영에 사로잡힌 이 민족을 구원하자는 류씨의 외침과 호소에 공감하며 '아멘'을 보내지 않을 목사와 교인이 어디에 있겠는가?

기성 교회가 전도하지 않는다는 류씨의 비판에 도전을 받으며 자신의 전도의 열심이 부족함에 대해 죄책을 느끼지 않을 그리스도인이 어디 있겠는가?

전도를 열심히 해야 한다는 너무나도 당연한 대의명분 앞에 누가 감히 반론을 제기할 수 있겠는가?

그러나 우리는 사이비운동이 전도라는 미명 아래 비판과 반론의 화살을 최대한 피하면서, 교회 안으로 침투해 들어올 수도 있다는 사실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by 活死人 | 2010/10/13 00:10 | 다락방(류광수) | 트랙백 | 덧글(0)

다락방, 예장전도총회



그동안 류광수목사의 다락방전도운동은 기성교단과 끊임없이 논란을 일으키며 분쟁을 일으켰으며 오랫동안 이단시비가 계속 되어왔다.
이에 류광수목사는 기존 교단과 분열하여 "예장(전도)총회"라고 하는 교단을 새로 만들었다.

그런데 최근에 들어와서 류광수목사의 전도총회가 모든 것을 뉘우치고 회개한다고 하며, 예장합동(총회)교단으로 재가입을 시도하고 있으며, 예장합동(총회)측은 이것을 긍정적으로 검토할 것을 발표하였다.
물론 다락방측의 재가입에 대해 찬성을 하는 사람들도 있고 반대를 하는 사람들도 있음으로 인하여 많은 문제의 소지를 갖고 있는 것은 확실하다.
과연 류광수목사가 진정으로 회개하였는가에 대한 것은 알 수가 없으므로 무엇이라고 말할 수 없다.
그러나 류광수목사는 신학교 대지 및 건물 50억 상당과 430개의 교회, 601명의 목회자의 헌신을 약속하였고, 무엇보다도 이러한 점이 재가입의 조건으로서 작용되지 않았는가라는 비판이 있다.
다락방의 재가입문제에서 가장 중요한 조건은 그의 물질적인 증정과 교회수나 목회자 수가 아니라, 그의 신학과 사상이 수정되었는가의 여부를 철저하게 조사하여야만 할 것이다.
또 그동안 다락방에서 가르쳐 온 사상과 가르침에 젖어있던 교인들에게 그 내용이 모두 틀렸다는 것을 다시 재교육시킬 수가 있는가가 문제의 관건이 된다.

현재 각 교단에서의 다락방전도운동에 대한 이단성의 연구결과는 다음과 같으며, 그동안 다락방에 대한 연구발표는 해제되거나 취소된 적은 없다.
과연 무엇이 문제가 되었는지 알아보자.




▶ 각 교단의 연구와 발표

예장합동
1996년/80회 다락방 확산방지 및 이단성 규명에 관한 조사위원회 구성 연구돌입
1996년/81회 구원론. 마귀론에서 심각한 오류/ 이단으로 규정/ 관련자 노회별로 시벌. 답습 금지

예장통합
1996년/81회 사이비성으로 규정/ 마귀론, 기성교회 부정적 비판, 다락방식 영접/ 참여 답습 금지

기성
1997년/52회 사이비운동/ 집회참석 책자사용 가담자는 교단 특별법 따라 엄중 처벌

기감
1998년.87호 이단으로 규정/ 감리교신학과는 너무나 큰 차이 드러냄/ 참여 동조금지

기침
이단으로 규정 참여금지령

예장고려
1995년/45회 비개혁주의 사상. 비복음주의. 균형을 잃은 신앙. 사단. 축사신학 이단사이비규정

예장개혁
1995년/80회 이단 사이비의 불건전 단체로 규정 성명서 발표/ 참여. 도입 금지령

예장고신
1995년/45회 1997년/47회 불건전운동 규정/ 참여금지. 지속적 참여자 징계/ 신대원교수들에게 연구위임/ 이단으로 규정/ 관련자 권징

고신교수
1998년.8.30 고려신학대학원교수회/ 고신 총회에 제출된 교수 보고서/연구결과 이단 판정서




▶ 요약과 결론


(1) 류광수씨가 예장 합동측 부산노회로부터 목사면직 처분을 받은 것은 91년도의 일이다.
그 이유는 음주운전 사고와 뺑소니로 구속된 사실, 그리고 성락교회 베뢰아의 김기동 이단사상과의 유사성 및 관련성 등의 이유였다.
그는 이 사건에 대해서 처음부터 거짓말을 하므로서 목회자적인 도덕성에 문제점을 나타내었다.


(2) 다락방의 가장 두드러진 문제점은 구원의 단계를 몇가지로 분류하여 1. 아는 단계, 2. 영접하는 단계, 3. 믿는 단계 등으로 구별하여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그리고 기존교회에 다니는 성도들은 예수를 아는 단계에서 벗어나 예수를 재영접하여야만 한다고 주장하였다.
다락방측은 그것을 오해이며 표현상의 실수라고 부정하고 변명하였지만, 다락방의 교재와 문헌에서 는 그러한 사상이 명백히 발견되어졌다.


(3) 다락방의 교재와 문헌을 볼 때에 베뢰아 성락교회의 귀신론과 매우 유사한 주장이 곳곳에서 발견되어지며, 마귀를 결박하는 것이 구원론의 가장 중요한 핵심인 것으로 결론을 내리므로 이원론을 주장하고 있다.
류광수목사는 자신이 베뢰아교육을 받은 적이 없다고 주장하고 있지만, 그가 베뢰아 산해원(마산 소재)에 많은 교인들을 데리고 여러번 방문하였다는 증거가 있었으며, 다락방 교재에서의 류광수목사의 견해는 베뢰아의 주장과 글자까지도 동일하게 일치하는 부분들이 발견되어졌다.
그의 성경해석과 강의는 너무 극단적으로 치우쳐 있다.
그는 구원론을 마귀와 하나님과의 이원론적인 시각으로만 보며, 예수님이 오신 목적은 마귀를 멸하는 것이라고 주장하며, 그것을 알아야만 구원이 있고, 예수를 재영접하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예를 들면 한국교회의 98%가 마귀에게 사로 잡혀 있다고 하므로써 이미 예수를 믿는 자도 다시 예수를 영접하여야만 한다는 주장을 하며, 모든 문제를 다락방에서 다시 시작하여야만 하는 것으로 주장하고 있었다.


(4) 다락방에서 예수를 믿으면 성도들이 천사동원권, 사탄결박권, 기도청구권 등의 권세를 갖게 된다는 주장을 강조하므로서, 인위적이며 신비주의적인 견해를 강조한다.
또한 예수를 영접한 자가 기도를 하면 3일만에 응답이 있어야 하며, 응답이 없으면 예수를 영접하지 않은 것이라고 주장을 하기도 한다.
예를 들면 아래와 같은 극단적인 표현을 들 수가 있다.
류광수목사는 "3일만에 하나님께서 응답하십니다. 저는 3일을 넘긴 일이 없습니다"(현장복음메시지 2편 p.120)라고 주장을 한다.
또 이러한 주장을 하기도 하였다.
"교회 다니는 사람중에 기도 응답 받지 못한 사람을 추적해 보면 예수님을 진짜 영접 안해서 그래요"(현장복음메시지 2편 p.11).
즉 다락방에서 예수를 영접하여야만 천사동원권과 사탄결박권, 기도청구권과 같은 능력을 받게 된다는 신비주의적인 주장을 가르치고 있는 것이다.


(5) 기존교회가 그동안 잘못 가르치고 있으며, 다락방에서만 진리를 가르친다는 주장을 자꾸 강조하므로 배타적인 분열을 강조하고 있다.
기존교회의 성도들이 예수를 다시 영접하여야만 한다는 <재영접론>이라는 주장이 다락방에서 그동안 명백하게 강조되어지고 있었다.
다락방교리를 수용한 교회에서 다락방의 교리를 반대하는 성도들과 수용하는 목사측의 대립으로 교회가 분열되어진 실제 예가 상당히 많이 있어 왔다.


by 活死人 | 2010/10/12 23:07 | 다락방(류광수) | 트랙백 | 덧글(0)

다락방 교재를 통한 교리 비판


아래 푸른색은 지금도 사용하고 있고, 지금도 가르치고 있는 다락방 교재입니다

현장복음멧세지. 제가 2008년10월 현재 인터텟을 통하여 다락방 교회의 자료실에서 찾은 것이며, 다락방을 나온 사람은 “이 교재를 통하여 다락방을 배웠다”고 증언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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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과 예수의 이름

  2.예수 이름으로 구원받는 단계:

    (1)아는 단계(사53:5, 요삼1:2, 요일3:8)

       1)예수님이 그리스도이심과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아는 단계

       2)예수님에 대해 얼마나 알게 되느냐에 따라서 하나님의 능력을 누리게 된다.

       3)사53:5-6을 알게되면 모든 문제 해결을 받게 된다.

    (2)믿는 단계(요3:16)

       1)예수님에 대해 알았다면 그 다음은 자연히 믿어야 되는 것이다.

    (3)영접하는 단계(계3:20, 요1:12)

       1)어떻게 영접하는가?  ①기도로 영접하고(롬10:9-10)

                           ②마음(영혼) 중심에 모시고(요1:12)

                           ③생활 중심에 영접함(갈2:20)

     2)영접하면 어떻게 되는가? → 하나님 자녀된 권세와 축복 누림.

       

 ① 성령의 내주(고전2:12, 고전3:16, 요14:16)

 ② 성령의 역사(기도 응답, 요14:14, 요16:24)

 ③ 성령의 인도(요14:26-27) - 모든 삶을 인도하심

 ④ 사단, 마귀 권세 결박(마16:18,엡2:2,막16:17,눅10:19)

 ⑤ 천군, 천사 동원(히1:14, 시103:20-22, 계8:3-5)

 ⑥ 천국 시민권(빌3:20, 눅10:20)

 ⑦ 세상 정복권(마28:16-20, 행1:8)

 

   (4)시인하는 단계(롬10:9-10, 10:32-33, 16:13-18, 행2:21)

       1)신앙고백


    (5)나타내는 단계(행1:8, 막10:29-30)- 증인

       1)전도

       2)간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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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예수를 믿는 단계와 영접하는 단계를 다르게 구별하고 있습니다. 

2. 사단결박권, 천사동원권을 그대로 사용하고 있으며, 분명히 예수를 영접하면 받게되는 하나님 자녀가 된 권세와 축복 누림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3. 지금은 사단결박권과 천사동원권이라는 용어를 사용하지 않으며 가르치지 않는다는 변명 역시 사실이 아닙니다. 지금도 가르치고 있으며 수정되지 않았습니다.

 

게다가 이 영접이라는 용어가 일반교회와 다른 점은 바로 위트니스 리의 주장과 같은 (1) 양태론적인 이해, (2) 베뢰아의 주장과 같은 예수가 마귀를 멸하러 오신 것을 알아야만 한다는 이원론적인 이해에서 비롯되었다는 것입니다. (별도로 올린 양태론적인 증거를 참고하십시요)

즉 다락방에서 말하는 "영접"은 우리 기독교가 말하는 "믿음"이 아니라, "하나님 = 예수 = 성령" 으로 보는 양태론적인 삼위일체론에서 성령이 내주하는 것을 예수가 내주하는 것, 나아가서는 하나님이 우리에게 오시는 것으로 동일시하는 것입니다.

또 그들이 말하는 영접은, 마귀를 멸하기 위하여 예수가 온 것을 알아야 하는 이원론적인 사상에서 출발합니다, 
 

그 교재에 의한 병의 치유에 대해서 살펴 보겠습니다.

예수를 믿는 자의 병 치유이며, 대부분의 병이 귀신에 의한 병이므로 약이나 의사의 치료로 의존하면 안되며, 영혼의 치료부터 먼저 하여야 한다는 것입니다.

베뢰아 마귀론가 유사합니다.

또 조상의 죄가 병의 원인이 된다는 가계저주론적인 주장이 분명히 기록되어 있으며, 그 조상의 죄가 원죄와 자범죄와 구별되어 있습니다. 원죄와 자범죄 외에 조상에 물려받는 죄도 있는지요?

배뢰아에서는 조상 중에서 제 명에 죽지 못한 불신자의 영혼이 후손에게 들어와 병과 재난을 일으킨다고 주장하지 않습니까?

다락방에서는 재난, 불화, 실패도 영적인 병이며, 마귀를 삼기는 것이 가족에게도 연결된다고 합니다.

가족에게도 연결되는 조상의 죄, 이것이 가계저주론이 아니면 무엇입니까?


2.잘못된 치유법:

  (1)영혼의 병을 고치지 않는 것

  (2)마음의 병을 먼저 고치지 않고 육신의 병만 고치려는 것

  (3)의사, 약 등을 전적으로 의존하는 것

  (4)미신등을 의존하는 방법


3.병의 원인을 진단해 보자:

  (1)생리적인 것- 과로, 연령(창48:1, 10)

  (2)실수로 인한 것- 실족, 술(호7:5 ...술의 뜨거움을 인하여 병이 나며...)

  (3)하나님의 뜻이 있는 병(고후12:7, 단8:27)

  (4)죄로 인한 병

     

①원죄- 저주받은 병(원래 가진 병, 창3:16-19)

②조상의 죄- 특히 우상숭배(삼하12:15, 출20:4)

 ③자범죄로 인한 병- 왕하5:27, 대하1:12-19, 고전5:5

 

2.정신병, 영혼의 병은 사단(마귀)와 미혹의 영(악한 영)의 작용이 없이는

  들지 않으며, 그러므로 이 병은 성령의 능력이 아니고는 치료가 불가능하다:

  (1)마음의 병- 악령의 활동이므로 본인의 힘으로 불가능하며 환경에 따라 다소간의 차이는 있다.

  (2)재난, 불화, 실패- 이런 것들이 연속되는 것은 전부 영적인 병이다

  (3)마귀를 섬기는 것- 이 병은 사단(마귀, 귀신)의 권세에 깊이 사로잡힌 상태이므로 본인도 망하며 가족에게까지 연결된다.





by 活死人 | 2010/10/12 22:49 | 다락방(류광수) | 트랙백 | 덧글(0)

이슬람 제국주의의 야욕

2080년까지 전 세계를 이슬람으로 개종시키겠다.
<이슬람의 세계변화전략주제 세미나 개최 ?>

이슬람선교 다와(dawah)포스터



지난 9월13일 투아이즈 네트워크가 주최한 제3회 세미나가 170여명여 명의 참석자들의 뜨거운 관심 속에서 마쳤다.
‘이슬람의 세계변화전략’을 주제로 한 이 세미나는 월드 컴패션 회장인 테리 로(Terry Law) 박사와 전 이라크 공군 부참모총장인 조지 사다(George Sada) 장군, 미 남침례교 부총회장이자 올리벳대학 학장인 윌리엄 와그너(William Wagner) 박사가 강의하였다.

사다장군은 이라크의 공군2성 장군(공군부참조총장)이면서도 앗수르인 기독교 신자로서 많은 관심을 끌었다.
와그너박사는 남침레교 부총회장이면서도 32년 동안 구라파와 중동에서 선교부 회장으로 특히 이슬람 선교운동의 위험을 직시하고 이것을 미국과 세계에 알리는 사역을 하였다.

이번 세미나 특징은 이슬람이 전 세계적으로 무서운 위협이 된다는 것을 일깨운 세미나였다. 이번 강의 내용을 요악하면,

1) 이슬람은 부드러운 메카 이슬람과 비무슬림을 향하여 테러를 정당화하는 메디나의 이슬람이 있다.
2) 세계를 공포로 몰아넣는 이슬람은 메디나 이슬람이다.
3) 이슬람은 서구와 미국은 물론 아시아까지 급속도로 확산하고 있다.
4) 그럼에도 이슬람국가에서는 많은 무슬림들이 특히 꿈을 통하여 기독교로 개종하는 역사가 일어나고 있다는 것이다.

세 강사들은 자신들이 오랜 기간 직접 경험하고 연구해 온 이슬람 세계와 무슬림들의 실상에 대해 “결국 이슬람 세계는 소수의 과격주의 무슬림들이 주도해 왔다”는 것이다.


테리 로(Terry Law) 박사의 강의 내용은: 이라크와 아프간의 최고 지도자들에게 ‘종교의 자유’를 새 헌법에 포함시킨 장본인이다. “가장 중요한 자유는 종교의 자유”라며 종교를 바꿀 수 있는 권리는 인간의 기본권에 해당하며, 이슬람 국가에서도 예외 없이 존중되어야 할 사항임을 역설 하였다.

“샤리아(Sharī‘ah, 이슬람의 법)에 따르면 무슬림들은 타종교로 절대 개종할 수 없고, 3번의 기회에도 거절하면 가족에게 죽임을 당하게 된다. 로박사는 특히 이라크 쿠르드 지역에서 많은 무슬림들 대상, 다양한 선교활동을 하고 있으며 실제로 많은 쿠르드족 사람들이 기독교로 개종하고 있다.


둘째 강사인 조지 사다(George Sada) 장군은 목숨을 건 직언과 정직성으로 20년간 사담 후세인의 자문 역할을 했다.
그는 “평화를 사랑하는 다수의 온건주의 무슬림들이 있지만 사실상 이슬람 역사는 시아파와 수니파의 전쟁의 역사임을 강조하였다.

이라크는 634년까지 기독교 국가였으나 아랍인의 공격으로 이슬람 국가가 된 이후 수백만의 기독교인이 학살되고 학대 받았다고 밝혔다.
아시리아 기독교인의 경우 75만 명이 학살됐으며 350만 명이 박해를 피해 해외로 흩어졌다.
“바로 1~3년 전만해도 종교 때문에 많은 이들이 참수당했고 10대 어린이들은 십자가에 매달려 죽었으며 여성들은 강간당했다”며 “과격한 무슬림들은 자신들과 같은 무슬림들도 학살하는 테러리스트의 폭력을 서슴없이 보여 주었다”고 증언했다.

특히 후세인의 독재정권 때는 쿠르드족이 18만2천 명, 시아파가 50만 명이 학살됐고 4천8백여 개 마을이 폐허가 됐다.
또 후세인은 실제 핵무기와 생화학무기 등 대량살상무기를 소유하여 중동 국가들은 전 세계에 위협적인 존재였다.
따라서 미국의 이라크 침공은 정당한 판단이었으며 해방전쟁이라고 감사한다.

장군은 “코란에는 ‘당신의 적과 알라의 적을 위해 가서 테러를 하라’는 구절이 나와 있다”며 “이는 곧 무슬림이 아닌 모든 사람들은 죽여도 된다는 의미”라고 설명했다.
또 그는 “코란의 35개 구절에서 ‘가서 보는 사람마다 죽여라’, 115개 구절에서 ‘박해하고 테러하라’고 한다”며 “13억 무슬림이 모두 과격한 것은 아니지만 이들의 종교도 결국 코란에 뿌리를 두기 때문에 모두 테러리스트가 될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이것이야말로 이 땅에 생명과 평화를 주러 오신 예수님을 믿는 기독교와 이슬람의 가장 큰 차이점이라고 말하고 “폭력과 전쟁으로 모든 것을 해결하려는 무슬림들을 우리는 예수님의 사랑으로밖에 고칠 수 없다”고 말했다.



세 번째 강사인 윌리엄 와그너(William Wagner) 박사는 “무슬림들은 2080년까지 전 세계를 이슬람으로 개종시키겠다는 전략을 세우고 치밀하게 추진해나가고 있다”며 “UN 통계도 2050년에는 전 세계 청년의 절반이 무슬림이 될 것으로 발표한 이상 여기에 적극적으로 대처하지 않으면 안된다”고 주장했다.
이슬람의 주요 선교전략은 선교를 의미하는 ‘다와’(Da’wah), 성전(지하드), 모스크 건립으로 이 셋은 다 성공적으로 수행되고 있다는 것이다.

특히 무슬림들은 유학생 선교사를 파견하며 문화로 접근 학생들을 유혹한다는 것이다.
다음 수감자나 이민자와 같은 사회적 약자들에 접근해 이들을 이슬람으로 개종시키는 데 성공하고 있는 것이다.
무슬림들은 ‘지하드’(Jihād)이름으로 이슬람을 위하여 폭력과 살인도 서슴치 않는다.

여기에 사우디아라비아 정부가 있다.
사우디 정부는 매일 1억불 이상의 돈을 선교비에 투입한다는 것이다.
미국 남침례교 선교비는 년3억불이 조금 넘는다고 한다.


이슬람 선교를 낙타의 머리 들여 밀기에 비유한다.
코에서 시작, 결국 몸까지 들어와서 주인을 바깥으로 몰아낸다는 것이다.
그러나 중동 국가에서는 교회당 수리도 정부의 허락 상황이라고 하였다.
그러나 이러한 상황에서도 나이지리아를 비롯해 여러 이슬람 국가에서 무슬림들이 기독교로 개종하는 일들이 일어나고 있는데 그는 “거의 대부분 하나님의 음성이나 꿈, 환상과 같은 특별한 계시와 병 고침과 같은 기적을 통해 무슬림들의 개종이 이뤄진다”고 밝혔다.


강의 후 질문시간에서 참석자 중 한 이슬람 국가 출신 목사는 지금 무슬림들이 한국에서 결혼을 통해서 많은 여성들을 무슬림으로 개종시키고 있다고 하였고, 와그너 박사는 “이슬람에서는 아내를 택할 때에는 거짓말을 인정한다”며 “많은 여성들이 ‘나는 부자다’, ‘나는 기독교인으로 변화됐다’는 등의 거짓말을 믿고 결혼했다가 무슬림이 되고 만다”고 우려했다.
투아이즈 네트워크는 한국에서 이슬람 활동과 더불어 한국에서 이슬람을 향한 입장을 다음과 같이 밝혔다.

by 活死人 | 2010/04/12 11:33 | 이슬람교 정보 | 트랙백 | 덧글(0)

이슬람이 위험하지 않다?

[091212 크리스천투데이] "이슬람이 위험하지 않다? 인권선언과 비교해보라"


“이슬람이 위험하지 않다? 인권선언과 비교해보라”
이맘 출신 마크 A. 가브리엘 박사, 11일 기자회견에서 밝혀


이집트의 알 아즈하르 대학에서 이슬람 역사와 문화를 공부하여 박사학위를 받고 이슬람의 모스크에서 이맘으로 활동했으며, 알 아즈하르 대학에서 교수로 일했던 마크 A. 가브리엘 박사가 한국을 방문했다. 그는 이슬람의 실체와 문제점에 대하여 밝히면서 유엔이 정한 인권 차원에서 문제가 많다고 주장했다.

가브리엘 박사는 “이슬람은 하나님과 상관없는 종교이며, 무함마드에 의하여 세워진 종교”라고 전제하고, 이러한 이슬람의 실체를 알면 세계인들은 이슬람을 인정하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가브리엘 박사는 1948년에 유엔이 선포한 “세계인권선언”에 비춰 볼 때, 이슬람교는 세계인이 모두 누려야 할 보편적이고 천부적 인권을 유린하는 종교라고 밝혔다. 가브리엘 박사가 기자회견에서, ”세계인권선언” 조항과 이슬람이 행하고 있는 극단적인 인권유린 상황을 조목조목 밝힌 내용은 다음과 같다.

세계인권선언(이하 인권선언) 제1조에 보면 “모든 사람은 태어날 때부터 자유롭고, 존엄성과 권리에 있어서 평등하다”고 하고 있다. 이에 반하여 이슬람에서는, 이슬람은 비이슬람보다 우월한 종교로 간주하는데, 무슬림이 비무슬림을 살해해도 처벌받지 않는 것이 그 예가 된다고 하였다.

인권선언 제2조에서는 “모든 사람은 인종, 피부색, 성, 언어, 종교, 정치적 또는 그 밖의 견해, 민족적 또는 사회적 출신, 재산, 출생, 기타의 지위 등에 따른 어떠한 종류의 구별도 없다”고 하고 있다. 그러나 이슬람에서는 “남자가 여자보다 우월하다(코란 제4장 30절)고 하고 있으며, 하디스(무함마드의 언행록)에 보면, 이슬람은 세계의 모든 종교를 취소시키기 위해서 만들어졌다고 주장하고 있음을 볼 때 결코 차별 없는 종교라고 말하기 어렵다고 밝히고 있다.

인권선언 제3조는 “모든 사람은 생명권과 신체의 자유와 안전을 누릴 권리가 있다”고 명시되어 있다. 그러나 이슬람에서는 개개인의 생명권과 신체의 자유가 보장되지 못하는 경우가 허다하다고 하였다.

인권선언 제4조는 “어느 누구도 노예나 예속상태에 놓여 지지 아니한다. 노예 매매는 금지 된다”고 하고 있다. 그러나 이슬람에서는 역사적으로 볼 때, 무함마드가 노예 매매를 하는데 직접 관여 했으며, 그 내용은 하디스에 기록되어 있다고 밝혔다. 지금도 이슬람 지역의 일부에서는 노예제도가 있어 이에 대하여 해방하려는 세계적 NGO들의 노력이 계속되고 있다고 주장하였다.

인권선언 제5조는 “어느 누구도 고문, 잔혹한 행위, 비인도적이고 모욕적인 취급과 형벌을 받지 아니 한다”고 하는데, 이슬람에서는 도둑질을 한 것으로 손과 발이 잘리는 것은 물론, 잔혹한 처벌이 인정되고 있다. 음주를 해도 공개태형이 이루어진다. 지금도 이슬람의 여러 국가에서 이런 행위가 이뤄지고 있어 인권이 유린당하고 있다.

인권선언 제7조에서는 “모든 사람은 법 앞에 평등하고, 평등한 보호를 받을 권리가 있다”고 명시하고 있으나, 이슬람에서는 비 무슬림이 단지 종교가 다르다는 이유로 살해를 당해도 처벌이 안 되고 있다. 2007년 고 배형규 목사, 고 심성식 형제가 살해당한 이유도 단순히 종교가 다르다는 이유뿐이었다.

인권선언 제9조는 “어느 누구도 자의적인 체포, 구금 또는 추방을 당하지 않는다”고 하고 있으나 이슬람에서는 이와 같은 인권이 지켜 지지 않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인권선언 제16조는 “성년에 이른 남녀는 인종, 국적, 또는 종교에 따른 어떠한 제한도 받지 않고 혼인하여 기정을 이룰 권리를 가진다”고 하고 있다. 그러나 이슬람에서는 무슬림 내에서도 차별이 있는데, 그것은 여자는 한 남자와만 결혼할 수 있으나 남자는 네 여자와 결혼할 수 있다. 그리고 남자는 이혼할 권리가 있으나 여자는 그러한 권리가 없다. 또 무슬림 남자는 타종교인과 결혼할 수 있으나 여자에게는 허용이 안 된다고 하였다.

인권선언 제18조에서는 “모든 사람은 사상, 양심, 및 종교의 자유에 대한 권리를 가진다”고 하고 있다. 또 “종교를 바꿀 신념과 자유를 포함 한다”고 되어 있으나, 이슬람에서는 하디스에 보면 “누구든지 이슬람에서 개종하면 죽이라”고 되어 있고, 사우디에서는 배교한 사람을 칼로 공개처형한 적이 있었다고 하였다.

인권선언 제19조에서는 “모든 사람은 의견과 표현의 자유에 대한 권리를 가진다”고 하고 있다. 그런데 1988년 닥터 마크라는 작가는 이슬람권에서는 처음으로 노벨문학상을 받았으나, 대로에서 칼로 난자당하여 저격을 당했고 결국 사망하였다. 그의 작품 내용이 무슬림의 극단주의에 대한 비판 내용이 포함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면서 가브리엘 박사는 말하기를, 이슬람은 개인 삶의 24시간을 지배하는 종교이며, 국가의 근간이 뒤집어지는 힘이 있다고 하였다. 예를 들어 절대적 기독교 국가였던 이집트, 리비아, 터키의 예를 들었다. 또 현재 유럽에서 벌어지고 있는 이슬람화의 목표가 되고 있는 나라로는 독일, 벨기에, 덴마크, 영국이 있는데, 이러한 현상들은 결코 남의 나라 일이 아닌, 한국도 교훈으로 삼아야 됨을 강조하였다. 그러면서 프랑스와 스위스가 이슬람화의 위험에서 빠져 나오기 위해서 안간힘을 쓰고 있다고 하였다.

가브리엘 박사는 한국도 이미 극단적 이슬람의 세력권에 들어와 있는 것으로 분석하였다. 실례로 한국의 모 성원을 방문했는데, 그곳에서 이슬람의 테러리스트들이 기본적으로 읽는 서적(AR-RUH: The Soul's Journey After Death-9.11테러를 주도한 오사마 빈 라덴에게 가장 큰 가르침을 준 책, 이 책을 쓴 이븐 알카이엠은 대표적인 이슬람과격주의학자 3인 가운데 한 명)을 발견했으며 다수 배포되지 않았나 생각한다고 하였다. 그리고 자신이 한국에서 만난 여러 나라의 무슬림들이 결코 온건한 사람들이 아니었다고 술회하였다.

가브리엘 박사는 자신의 저서 5권을 한국어로 번역한 것을 기념하여 한국을 방문하였는데, 이날 한국교회언론회 사무실에서 “이슬람에 대한 한국교회의 바른 이해”라는 주제로 가진 기자회견을 마치면서, “한국 기독교인들이 제 삶의 경험, 이슬람과 기독교 비교 등을 통해 유익을 얻기를 바란다”고 하였다.

그는 이슬람과 관련하여 여러 권의 책을 내고 있다. 「이슬람과 유대인」「이슬람과 테러리즘」「이슬람, 서방세계와 문화 충돌」「이슬람 테러리스트 마음 엿보기」「무함마드와 함께하는 커피 한 잔」등이 있다.

by 活死人 | 2010/02/18 22:26 | 이슬람교 정보 | 트랙백 | 덧글(0)

“한국도 유럽처럼 이슬람 침투 심각해”

“한국도 유럽처럼 이슬람 침투 심각해”
무슬림 이맘서 기독교 변증가 된 가브리엘 박사 주장
2009년 12월 24일 (목) 07:46:23전정희 gasuri48@amennews.com


  
▲ 마크 A. 가브리엘 박사


마크 A. 가브리엘 박사는 이집트 소재 이슬람 최고의 명문대학 알 아즈하르에서 촉망받는 교수이자 이맘(기독교의 목회자/유대교의 랍비에 해당하는 이슬람 성직자)이었다.
그는 ‘살인을 명령하는 꾸란’을 가르치는 것에 대해 회의를 느끼다가 ‘알라가 자비로운 분이라면 어떻게 사랑이 아닌 증오와 살인을 명령하는가?’라는 문제를 제기해 대학에서 해고되고 비밀경찰에 체포돼 옥고를 치렀다.

무신론자가 된 그는 엄청난 두통에 시달렸다.
이슬람이 진짜 하나님으로부터 온 것이 아니라고 생각하면서부터 생긴 증상이다.
어느 날, 두통약을 지나치게 복용하는 그를 우려하는 약사와 왜 차도가 없는지에 대해 이야기하다가 어렵게 고민을 털어놓았다.
알고 보니 약사는 크리스천이었다.
그 약사에게서 건네받은 성경책 한 권.
이후, 모든 것이 변했다.


그녀는 ‘약을 먹으면서 이 책을 읽으라’고 했습니다.
처음으로 마태복음을 읽기 시작했는데, 5장의 산상보훈에서 눈에 확 띄는 구절이 있었습니다.
‘모세가 무엇을 가르쳤는가? 눈에는 눈으로 이에는 이로라고 하였으나 나는 너희에게 가르치노니 원수를 사랑하라’
이 말씀으로 내 마음에 큰 소동이 일어났습니다.


가브리엘 박사는 요한복음 8장에 와서 그리스도인이 되기로 결심했다.


간음한 여인이 현장에서 잡힌 이야기에 이르렀습니다.
꾸란에도 이와 비슷한 이야기가 있습니다.
어떤 무슬림 여인이 간음을 하다 무함마드 앞에 끌려오는데 그녀는 간음으로 임신중이라고 말했습니다.
무함마드는 여인에게 ‘집에 가서 아이를 낳아 2년 동안 젖을 먹이고, 젖을 떼면 오라’고 했습니다.
2년 뒤에 왔을 때 무함마드는 ‘아이가 보는 앞에서 돌로 쳐서 죽이라’고 하였습니다.
이는 성경의 이야기와 완전히 대조되는 것이었습니다.
이것이 기독교와 이슬람의 차이였습니다.
예수와 무함마드의 차이였던 것입니다.


글마당출판사(대표 최수경)의 초청으로 방한한 마크 A. 가브리엘 박사는 17일, 서울 오륜교회에서 오전 10시부터 오후 5시까지 강연했다.
‘이슬람 바로알기’ 특별 세미나에서다.
‘성경과 꾸란, 하디스는 무엇이 다른가’, ‘다민족사회 속의 기독교와 이슬람공존은 가능한가’, ‘꾸란 하디스의 이슬람 여성관’, ‘한국교회의 효과적인 이슬람권 선교전략’, ‘유럽의 이슬람화와 기독교의 대처’, ‘이슬람의 세계화전략과 한국’ 등 이슬람에 대한 거의 모든 주제를 다뤘다.
그는 지금 한달 째 이런 식으로 한국에서 순회집회를 강행하는 중이다.
세계적 기독교 변증가로 변모한 그의 열정이 고스란히 전해졌다.

강의도중 가브리엘 박사는 “나의 영적 멘토의 나라이기 때문에 진정으로 한국에 오기를 바라고 한국방문을 고대했다”며 한국과의 남다른 관계를 소개했다.


저는 온갖 고문후유증과 여러 정신적인 충격으로 번민하는 중 이웃에 있는 기독교인 약사가 전해준 성경을 통해 스스로 기독교인이 된 뒤 체계적인 기독교교육을 받고 싶어 했지요.
이 때문에 남아프리카공화국 케이프타운에서 예수제자훈련학교 과정을 공부하게 되었습니다.
이 때 첫 번째 만난 남아공 백인목사와 두 번째 만난 나이지리아 목사는 모두 일주일 만에 저를 포기했습니다.
하지만 세 번째 만난 한국인 선교사는 일주일 후에 울면서 저에게 말했습니다.
‘정말 당신은 왜 여기 왔는가? 예수를 믿고 진리를 알기를 원하는가? 아니면 방해하러 왔는가?’
저는 ‘나도 나를 모르겠다. 그러나 정말로 진리를 알기를 원한다’고 하면서 같이 울었습니다.



가브리엘 박사는 “바로 그가 나를 진정한 그리스도인이 될 수 있도록 양육해 주었다”며 “오늘 내가 가는 길과 주님과의 관계를 보면서 그분께 정말 감사를 드린다”고 말했다.


  

그러나 그는 한국에서 충격적인 사실을 목격하게 됐다고 밝혔다.

한남동 이슬람중앙사원 인근의 이슬람 전문 책방에서 과격 이슬람학자인 이븐 알카이엠의 영문판 책 <AR-RUH: The Soul's Journey After Death>을 무료로 배포하거나 판매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이븐 알카이엠은 9·11테러를 주도한 오사마 빈 라덴의 스승이자 대표적인 이슬람 과격주의학자 3명 중 한명이다.
지금도 무슬림국가인 이집트에서조차 그 내용이 테러를 부추기는 까닭에 그가 쓴 책을 소지하면 바로 구속될 정도로 판매가 금지된 불온서적이라는 게 가브리엘 박사의 설명이다.



이집트의 경우라면 상상할 수 없는 위험한, 테러를 부추기는 이슬람 서적이 버젓이 이슬람의 서점에서 무료로 배포되고 있는 것을 보고 소스라치게 놀랐습니다.
지하드를 수행하는 테러리스트들의 필독서가 버젓이 대한민국 서울 한복판에서 보급되고 있는 사실이 충격적이었습니다.

가브리엘 박사는 “그런 책은 미국에서도 판매가 불가능한데 한국에서 구할 수 있다는 것이 놀랍다”며 “그만큼 한국도 유럽처럼 이슬람의 침투가 심각하다는 걸 짐작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는 “한국정부는 물론 한국교회조차 이슬람에 대해 너무 모르고 있는 것 같다”며 “한국교회가 (이슬람에 포위된) 유럽의 전철을 밟지 않기를 바란다”고 덧붙였다.

가브리엘 박사는 또 “아랍어성경이 하나님을 알라와 동일하게 사용하는 오류로 인해 마치 이슬람이 기독교와 같은 뿌리의 종교인양 혼돈을 주고 있는데, 그런 혼란을 막기 위해서는 아랍어 성경번역을 새로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by 活死人 | 2010/02/01 09:11 | 이슬람교 정보 | 트랙백 | 덧글(0)

솔로몬의 축복은 두번다시 오지 않는다

네 소원이 무엇인고?

 

 

 

일천번제를 드린 솔로몬의 꿈에 나타나셔서 “내가 너에게 무엇을 줄꼬? 라고 물으셨고, 이에 솔로몬은 지혜를 구했으며 하나님께서는 솔로몬이 구했던 지혜뿐만 아니라 부와 재물과 명예를 주셨습니다.
이 한구절에 마음에 품고 소원 성취를 위해서 솔로몬처럼 정성을 다해서 일천번제를 드리고 있습니까?

 

한가지 더 확실하게 알아야 할 것이 있습니다.

성경을 반만 읽지 마시고 일천번제에 대한 구절을 끝까지 읽어 보시기 바랍니다.
열왕기상3:4~15절과 역대하 1:1~13 까지를 정확하게 무슨 말씀인지 이해를 하셔야 합니다.
"일천번제를 드렸더니 하나님께서 네 소원이 무엇인고? 네가 구하는 것을 다 주리라." 는 말씀만을 읽었다면 오해 하신 것입니다.

 

 

왕상3:12절과 대하 1:12절에 마지막으로 결론을 말씀 하셨습니다.


솔로몬이 구했던 지혜와 지식를 주시고 그 마음이 기특하고 갸릇해서 구하지 아니한 부와 재물과 존영(명예)도 준다.


그러나 너의 전과 후에도 너처럼 이같은 것을 받는 자가 없으리라.입니다
.

이같은 것 즉 지혜와 부와 재물과 존영(명예)를 아무에게도 주지 않겠다고 선언하셨다는 말씀입니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께서 솔로몬에게 주셨던 지혜와
부와 재물과 명예를 다시는 아무에게도 주지 않겠다고 하신 것입니다.

그런데 한국교회의 일천번제는 하나님 그래도 내게 주시옵소서! 라고 생떼를 쓰고 있는 것입니다.



이래서 기복신앙은 대단히 위험한 것입니다.
성서에 나오는 일들을 자세히 보지 않으면 이런 오류가 발생하는 겁니다.

다시 강조컨대, 솔로몬이 받은 이런 축복은 역사상 솔로몬 만이 유일하게 받은 복이며, 그 후에도 두번다시 이런 일은 발생하지 않았음을 아셔야 합니다.

하지만 그런 지혜와 재물의 복을 얻은 솔로몬 조차도 1천명이 넘는 후궁들, 그것도 이방신을 숭배하는 여자들을 궁 안으로 들여 결국 자신 조차도 우상숭배에 물들게 된 것입니다.



보라, 내가 네 말대로 행하였느니라. 보라, 내가 네게 지혜롭고 깨닫는 마음을 주었은즉 너 이전에도 너와 같은 자가 없었거니와 너 이후에도 너와 같은 자가 일어나지 아니하리라.
또 네가 구하지 아니한 것 즉 재물과 명예도 내가 네게 주었은즉 네 평생토록 왕들 중에서 너와 같은 자가 없으리라.
(열왕기상 3:12-13)

by 活死人 | 2009/10/30 16:46 | 성경난제해설 | 트랙백 | 덧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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